과대포장 용기가 규정 준수? '측정의 배신' 덕이었다

입력
2021.01.0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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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 용기 두께 1cm 넘을 때만 포장부피에 포함

편집자주

기후위기와 쓰레기산에 신음하면서도 왜 우리 사회는 쓸모없는 플라스틱 덩어리를 생산하도록 내버려 두는 걸까요? 그동안 주로 소비자들에게 전가해온 재활용 문제를 생산자 및 정부의 책임 관점에서 접근했습니다. '제로 웨이스트 실험실'의 다른 기사들과 함께 읽어주세요.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오랜 격언이 다시 생각나는 대목이었다. 화려한 뚜껑과 두꺼운 용기, 적은 양의 내용물. 누가봐도 플라스틱이 과다하게 쓰인 화장품 용기들은 사실 정부의 규정을 지키고 있다.

환경부령(고시)이 제시하고 있는 화장품의 포장공간비율(포장용적에서 제품체적을 빼고 이를 다시 포장용적으로 나눈 값)은 10%. 한국일보 기후대응팀은 처음 이 기준을 접하고 납득할 수준이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화장품 업계가 이 기준을 준수한다면, 왜 화장품 용기의 두께가 전체 너비나 높이의 3분의 1 가량인 제품들이 넘쳐나는 것일까. 그 답은 숨은 '1cm'에서 찾을 수 있었다.



제품은 크게, 포장재는 작게 계산… '측정의 배신'

환경부는 과대포장을 방지하기 위해 제품별로 포장공간비율을 정해 놓고 있다. 세제류는 15% 이하, 제과류는 20% 이하, 화장품은 10% 이하, 완구·인형류 35% 이하 등이다. 2019년 환경부는 '단속 제품 93.3%가 정상포장됐다'고 밝힌 바 있어서, 이 기준과 발표 내용만 보면 한국의 소비재는 과대 포장 비율이 미미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큰 차이가 있다. 그 이유는 포장공간비율을 측정하는 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환경부는 이 측정방식도 고시로 정해놓고 있는데,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많다.

우선 용기 겉면이 아닌 안쪽을 기준으로 측정 한다. 로션통의 외곽이 아니라, 로션이 담긴 안쪽 공간만을 포장재의 부피(용적)로 계산하는 것이다. 용기 안팎의 거리, 즉 두께는 계산에서 제외된다. 1cm를 넘기면 포함시키지만, 그마저도 1cm는 뺀다. 두께가 1.5cm인 용기는 0.5cm만 합산되는 식이다. 이로 인해 2~3cm의 두꺼운 플라스틱 용기를 사용해도 10% 비율을 충족하고 '정상'으로 분류될 수 있다.

'1cm룰'이 포장 부피를 축소해 계산하게 한다면, 반대로 내용물의 부피(체적)를 측정할 땐 부풀려 계산하도록 돼 있다. 내용물 부피를 '제품을 감싸는 직육면체'를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곰인형의 부피는 인형이 실제로 차지하는 공간이 아니라, 인형에 딱 맞는 네모 상자로 계산된다. 네모 상자와 곰인형 사이 빈 공간도 전부 제품 부피로 계산하는 셈이다.

'제품의 상하좌우가 바뀌어도 포장이 가능해야 한다' '제품 규격만 부피로 계산하면 포장 자유도가 지나치게 떨어진다' 등의 이유 때문이지만, 악용 소지가 많다. 팔을 뻗은 장난감이나 막대사탕의 경우 부피가 크게 부풀려진다. 이덕항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 수석연구원은 "악용소지가 많아 보완을 위한 논의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개선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품목별로 따져 들어가면 의아한 점이 더 많다. 환경부령에 따라 의류는 와이셔츠·내의류만 규제를 받고, 전자제품은 300g이하의 휴대용 제품만 규제를 받는다. 미용도구·가구·칫솔 등 대상 제품에서 제외돼 아예 규제를 받지 않는 제품도 수두룩하다. 제과류는 이미 포장공간비율 20%를 허용하는데, 과자 포장은 공기 주입을 이유로 35%까지 인정한다.

환경부 관계자는 "제품마다 파손이나 안전을 위해 필요한 포장재의 기준이 다른데 이를 일일이 규제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서도 "두께에서 1cm를 제외하는 등의 기준은 제정된 지 20년가량 지나 현재의 눈높이와 다른 면이 있어서 개선 방안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과태료는 100만원, 단속은 명절에만

기준 자체도 있으나 마나 할 정도로 느슨하지만, 그나마 이 기준조차 지키지 못한 경우에도 과태료가 10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기업명단도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무서울 게 없다. 오히려 100만원을 내고, 기준을 어겨 포장을 화려하게 해서 많이 팔면 더 이익인 셈이다.

환경부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 포장공간비율 기준 위반으로 과태료 처분을 받은 건수는 110건, 평균 100만원 수준이다. 불합격 제품 명단은 비공개 정보로 규정돼 있고, 심지어 환경부도 모른다. 환경부 관계자는 "포장 검사기관 보유 자료여서 환경부는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포장 검사기관인 한국환경공단은 "업체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어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업체가 과태료를 감수하고 기준에 어긋난 제품을 유통해도 소비자들은 알 방법이 없다.

단속도 거의 이뤄지지 않는 듯 보인다. 포장공간비율 검사는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이 마트에 찾아가 단속하는 '사후검사제'로 운영된다. 지자체에서 임의로 단속을 한 뒤 위반 의심 업체에 검사명령을 하면, 업체가 한국환경공단 등 검사단체에 정밀 검사를 의뢰하는 식이다. 지자체는 검사 결과를 토대로 위반 기업에 과태료를 처분한다.

실제 단속은 대부분 명절 선물세트를 대상으로만 이뤄지는 형국이다.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2019년 지차체의 검사명령은 1,650건뿐이었다. 2013년 4,368건에서 매년 줄어들었다. 같은해 생산된 화장품 품목만 보더라도 12만여건에 달하는 것에 비하면 극히 적은 수다. 서울시 관계자는 "상시 단속을 하더라도 설날이나 추석 명절만큼 하진 않는다"며 "월별 단속 횟수를 따로 집계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박상우 저탄소자원순환경제소장은 "일본은 매년 업체별로 포장재 감축 목표를 제시하고 그 결과를 공개함으로써 포장 감축을 이끌어낸다"며 "업체들의 개선을 이끌어낼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재영 KCL 물류안전센터장도 "제품에 포장공간비율을 의무적으로 표기하도록 해 사전검사와 제품 개선을 유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20대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이 발의되어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논의되고 있다"며 "사전검사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현종 기자
장수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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