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에게 가장 두려운 존재 너구리

입력
2020.12.22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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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우리가 배워온 자연생태계란 약육강식, 적자생존, 자연도태의 규칙이 존재하는 공간입니다. 풀을 메뚜기가, 다시 사마귀, 개구리, 뱀, 오소리, 늑대로 연결되는 흐름을 대부분 기억합니다. 하지만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반대 상황도 발생합니다. 대표적 사례가 기생충의 개입이죠. 영화를 통해서도 잘 알고 있는 연가시는 알을 물 안에서 낳습니다. 부화한 연가시 유충을 하루살이 등의 유충이 먹고 육상에 올라오며 이를 육식성 곤충이 먹고 최종 숙주가 되지요. 감염된 육식곤충은 생활사를 정상적으로 마치지 못하고 연가시의 신경조절물질에 의해 물로 뛰어들면 생을 마치게 됩니다. 연가시 입장에서는 성공적 기생이지만 사마귀는 결국 자기 먹이인 메뚜기에 의해 제거당한 셈이지요. 바로 기생충이라는 무기에 의해.

여기에 인간이 미치는 사례도 있습니다. 개구리 기형과 관련한 기생충 이야기입니다. 미국 남서부 개구리에 기생하는 리베이로이아는 조류를 최종 숙주로 갖습니다. 유충은 올챙이에 기생하며 개구리 다리가 만들어지는 위치에 물리적 손상을 일으켜 다리가 구부러지거나 더 많이 만들어지게 합니다. 잘 움직이지 못하는 개구리는 새의 손쉬운 먹이가 되지요. 재미있는 것은 농사용 비료나 제초제가 유입되면서 습지 안의 상황이 극적으로 바뀝니다. 비료에는 질소와 인산이 포함되는데 이는 부영양화를 일으키며, 중간 숙주인 달팽이 수를 늘려 결국 이 기생충 유충의 풍부도를 극적으로 변화시킵니다. 또한 물에 녹아 든 제초제는 올챙이 면역체계를 약화시켜 더욱 기생충 감염에 취약하게 만들지요.



최근 아무르호랑이의 바이러스 질병인 개홍역 문제를 다룬 논문이 발표되었습니다. 이미 2003년과 2010년에도 개홍역에 걸려 죽은 것이 확인된 바 있지요. 550여마리 남은 아무르호랑이 보전에 빨간불이 켜진 셈입니다. 연구 결과 민간의 개보다는 너구리나 오소리, 검은담비 등의 바이러스 유전자가 호랑이의 것과 유사하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즉 하위 생물체가 상위 포식자를 질병으로서 통제할(의도적이건 비의도적이건) 수 있다는 것도 확인된 것이죠. 문제는 이 야생 식육목 동물 전체에 대한 예방접종을 할 수 없다는 문제에 당면합니다. 하지만 질병 모델링을 통해 호랑이에게 포획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예방접종을 한다면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개홍역 여파를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나라에도 존재하지요. 현재 환경부는 1970년대 거의 자취를 감춘 여우를 증식시켜 야생에 돌려보내고 있지만, 쉽지 않아 보입니다. 도처에 깔린 올무와 덫, 수없이 많은 도로는 이미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만, 또 다른 문제가 개홍역, 개선충증과 같은 질병이기도 합니다. 밀도의존성 질병으로 알려진 개선충증은 교란된 환경에서도 높은 밀도로 살아가는 너구리에게 만연한 질병이며 여우에게 건너가는 주요 다리가 되는 셈입니다. 생태계는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고 동물은 질병과 같은 방법으로 포식동물이나 경쟁자의 수를 제한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질병을 폭발시키는 인간의 역할까지 존재하면서 생태계 균형을 어찌 잡아나가야 할지 그 셈법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김영준 국립생태원 동물관리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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