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을 맞아 올 한 해 대출 총량을 관리해야 하는 은행이 가계 대출을 강하게 조이면서 지금껏 보지 못했던 '대출 절벽'이 만들어지고 있다. '2,000만원 이상 대출 금지'를 내건 은행에 이어 아예 전체 신용대출 신규 접수를 막는 시중은행까지 나왔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23일부터 연말까지 신용대출 상품 신규 접수를 아예 중단한다. 서민금융 대출 상품이나 긴급 생활 안정자금에는 여전히 창구가 열려있지만, 이를 제외한 모든 신용대출을 6영업일 동안 틀어막는 것이다. 신한은행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앞서 신한은행은 직장인 대상 비대면 신용대출 상품 판매를 중단하고, 대출모집인을 통한 신규 접수를 중단한 바 있다.
KB국민은행도 이날부터 31일까지 원칙적으로 2,000만원을 초과하는 모든 신규 신용대출을 막기로 했다. 이번 대출 중단에는 집단 신용대출이나 마이너스 통장도 포함된다. 이번 대책은 이달 14일 KB국민은행이 대출 금지 기준을 '기존 대출과 신규 대출을 합쳐 1억원 초과'로 세웠던 것보다 한층 더 강해진 규제다.
하나은행은 24일부터 대표 모바일 신용대출 상품인 '하나원큐 신용대출'을 한시적으로 판매하지 않기로 했다. 이 상품은 하나은행 비대면 신용대출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인기 상품으로, 사실상 신용대출 문을 닫는 셈이다. 이번 조치 종료일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이번 조치들은 당국이 시중은행에 대출 총량 조절을 강하게 요구하고 나선 탓이다. 지난달 금융당국은 고소득자의 1억원 이상 대출을 전면 금지했는데, 규제 시행을 앞두고 마이너스 통장 개설 건수가 사상 최대를 기록하는 등 이른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자금을 만드는) 수요가 몰린 바 있다. 당국 규제와 '대어급' 공모주 청약 영향으로 지난달 신용대출은 9조4,000억원가량 크게 늘었다. 사상 최대 규모다.
당국 규제 영향으로 다른 은행들도 대출 조이기에 여념이 없다. 앞서 카카오뱅크는 17일부터 신규 마이너스통장 신용대출을 중단했고, 우리은행은 11일부터 비대면 신용대출 상품 중 하나의 판매를 중단했다. 우대금리를 줄이고 대출 상담사를 통한 대출 모집을 중단하거나 전문직 신용대출 한도를 줄이는 은행도 나왔다.
당국과 은행의 갖가지 조치로 신용대출 길이 막힌 것은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5대 주요 시중은행에 따르면 22일 기준 개인신용대출 잔액은 133조8,234억원으로 지난달 말 대비 1,309억원 증가했다. 9조원 이상 증가한 11월에 비하면 사실상 거의 변화가 없는 셈이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연말 급격한 가계대출 증가와 이에 따른 리스크 확대를 막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