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홍콩 반(反)중국 시위대는 맨 얼굴로 집회에 참석해야 할지 모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됐는데도 말이다. 법원이 시위대의 마스크 착용을 불허하는 ‘복면금지법’이 합헌이라는 최종 판단을 내리면서다. 중국 정부의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시행 이후 인권을 옥죄는 각종 조치에 사법부도 편승했다는 비난이 거세다.
21일(현지시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홍콩 대법원격인 종심법원은 이날 지난해 10월 홍콩 정부가 ‘긴급정황규례조례(긴급법)’를 근거로 제정한 복면금지법이 헌법에 부합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복면을 쓴 범법자들의 행위로 법치주의가 훼손됐다. 홍콩 전체의 이익을 고려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또 해당 조치는 평화 시위가 폭력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홍콩 헌법인 기본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3월 범죄인인도법(송환법) 개정 반대로 촉발된 홍콩 민주화 시위가 격해지면서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그 해 10월 홍콩 입법회(국회)의 승인을 거치지 않고 긴급법을 발동해 복면금지법을 제정했다. 이에 야권은 “복면금지법은 기본법에 위배 된다”고 반발하며 소송을 제기했고, 홍콩 고등법원은 위헌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홍콩 정부는 항소를 통해 올해 4월 ‘부분 합헌’ 판결을 받은데 이어, 이날 최종 합헌까지 이끌어 냈다. 홍콩 행정부 대변인은 “사회적 이익과 개인 이익 사이에 균형을 잡으려면 전체의 이익을 감안해야 한다”며 판결을 크게 환영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도 이번 판결을 “홍콩 사법부의 ‘자율적 수정’”이라고 평했다.
반면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시민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하는 판결”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야권 정치인 렁쿽헝은 판결 직후 종심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열고 “사법부가 중국의 엄청난 압력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도 “중국의 고강도 조사를 받고 있는 홍콩 사법부가 자신들을 보호하려는 조치”라며 중국 정부의 입김이 판결에 작용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실제 중국은 지난해 홍콩 고등법원이 복면금지법 위헌 결정을 내리자 “판결 권한이 없다”면서 결정을 무효로 만들 수 있다고 위협했다.
시민권을 제한하는 잇단 조치는 5월 홍콩보안법 시행 이후 가속화하고 있다. 최근엔 조슈아 웡을 비롯한 홍콩 민주화 운동가들이 줄줄이 체포되기도 했다. 홍콩 반중ㆍ반정부 시위에 관한 책을 펴낸 안소니 다피드란 변호사는 AFP통신 인터뷰에서 “시위의 배경을 고려하지 않고 오직 ‘폭력과 불법’을 기준으로 모든 특권을 부여한 판결”이라며 홍콩 시민사회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질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