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상징 '헤라팰리스'에서 흘러나온 클래식의 정체

입력
2020.12.23 04:30
18면
드라마 '펜트하우스' 속 클래식 작품들

편집자주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하지만 막상 무슨 노래인지 잘 떠오르지 않는 음악, 그 음악을 알려드립니다. <끝>



상류층의 비뚤어진 욕망을 다룬 드라마 '펜트하우스'는 자극적인 서사로 '막장 드라마'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 삽입된 음악들은 기품이 넘치는 클래식이 많다. 등장 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대변하는 조력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소프라노 출신의 억척스런 엄마 오윤희(유진 분)의 딸인 배로나(김현수)는 엄마를 닮아 성악가를 꿈꾼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이면서, 오페라 축제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도시 '베로나'와 이름이 비슷하다. 자신의 진로를 엄마가 반대하자 배로나는 '헤라팰리스'에 사는 소프라노 천서진(김소연)을 찾아가 "제자가 되고 싶다"며 애걸한다. 그때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려고 부르는 노래는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 중 밤의 여왕이 부르는 아리아다. '마음 속에 지옥의 복수심이 있다'는 가사는 앞으로 벌어질 사건을 암시한다.

예술고등학교 입시 시험을 치르다 낙심한 딸을 위로하기 위해 오윤희가 불러주는 아리아는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에 나오는 '울게 하소서'라는 곡이다. 생활고와 주변 사람의 괴롭힘으로 힘들어 하는 모녀가 '슬픔으로 고통의 사슬을 끊어 달라'며 호소하는 심정이 녹아 있다.

성공한 기업인 주단태(엄기준)는 번듯해 보이지만 실은 폭력적인 인물이다. 자신의 딸이 "성악을 하기 싫다"며 반항하자 오빠 주석훈(김영대)을 집안의 비밀공간으로 데려가 때린다. LP판이 회전하며 흘러 나오는 노래는 모차르트 레퀴엠 중 '라크리모사'다. 레퀴엠은 교회 미사 때 쓰이는 진혼곡인데, 합창단의 성스러운 목소리가 극중 비극적인 사건과 대조된다.

주단태가 자신의 인생을 뒤흔들 정도로 질 나쁜 계략을 꾸몄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심수련(이지아)은 분노로 가득 차 그의 뒤로 다가간다. 손에는 흉기로 쓰일 것 같은 장식품이 들려 있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주단태는 태연히 의자에 앉아 헤드셋을 쓴 채 음악을 감상하고 있다. 공포스러운 상황과 달리 헤드셋에서 나오는 음악은 평화롭다. 베토벤 최후의 교향곡 9번 '합창'의 2악장. 환희와 인류애라는 작곡가의 메시지가 뚜렷해 연말이면 자주 연주되는 작품이다.

갈등이 절정에 달하는 순간에는 피아노 곡도 등장한다. 유언장을 빼앗으려고 자신의 아버지와 몸싸움을 벌이다 아버지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사고를 일으킨 천서진. 의식이 남아 있는 아버지를 구하는 대신 유언장만 가로채 집으로 도주한다. 이성을 잃고 피 묻은 손으로 피아노를 미친 듯 연주하는데 템포가 심상치 않다. 천서진이 연주하는 곡은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 12개 가운데 4번 '마제파'다. 초월적인 기교가 요구된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광기에 젖은 천서진의 타건이 인상적이다.

장재진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