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사건 당시 불법 군사재판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구순(九旬)의 4·3생존수형인들이 72년 만에 열린 재심에서 명예를 회복했다.
제주법원 제2형사부(장찬 부장판사)는 21일 내란실행과 국방경비법 위반 등의 혐의로 수감 생활을 한 송순희(95) 할머니 등 7명에 대한 재심 선고공판에서 전원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이 무죄를 구형한 만큼 항소 없이 판결이 확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법정에는 피고인 7명 중 김영숙(90), 김묘생(92) 할머니와 장병식(90) 할아버지가 참석했다. 김정추(89), 송순희(95) 할머니는 인한 치매와 거동불편 등을 이유로 참석하지 못했다. 또 재판 도중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고(故) 송석진(93) 할아버지와 고 변연옥(91) 할머니는 피고인을 대신해 재심 청구인인 유족들이 자리를 지켰다.
검찰은 앞서 지난 11월 16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무죄를 구형했다. 당시 검찰은 보도연맹과 여순사건의 재심사건 무죄 재판 등 과거사의 특수성을 고려해 이 같이 결정했다. 공소사실이 특정되지 못하면 형사소송법에 따라 공소사실에 대한 유·무죄를 판단하기 어렵지만 내란실행 등 과거사 사건에 대해서는 기준을 완화해 공소사실이 완성된 것으로 해석했다.
반면 변호인단은 4·3 당시 군법회의가 법률에 근거하지 않은 총체적 불법행위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사법부가 인정해 달라며 무죄가 아닌 공소기각을 일관되게 요청해 왔다. 무죄나 공소기각 모두 피고인의 권리구제에는 차이가 없어 사실상 둘 다 무죄 선고이지만, 당시 법률적 절차상의 하자를 국가와 사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앞서 2017년 4월 19일에 4·3생존수형인 18명이 처음으로 4·3관련 첫 재심을 법원에 청구했다. 이어 1년 9개월에 걸친 재판을 통해 2019년 1월 17일 사실상 무죄인 공소기각 판결이 내려졌다.
재판부는 이날 “국가의 사법 절차나 한국전쟁 등 역사적 상황을 고려하면 4·3 당시 재판이 이뤄졌다고 강하게 추정된다. 공소 제기를 전제로 재심 개시 결정도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사건은 판결문 등 재판기록 자체가 없지만 검찰이 수형인명부와 당시 상황, 피고인의 진술 등을 토대로 공소사실을 특정한 것으로 봐야 한다. 이에 따라 무죄를 선고한다”며 “부디 이 판결로 굴레가 벗겨지고, 여생동안 하루하루 평온한 삶이 이어지는 작은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