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내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다고 20일 선언했다. 안 대표의 출마는 서울시장 보선 판세는 물론이고, 차기 대선 구도도 흔들 수 있는 대형 변수다. 안 대표는 문재인 정권 심판이 최우선 과제라면서 2022년 대선 출마를 스스로 포기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보수 야권 단일후보'가 되겠다며 국민의힘 입당 가능성도 열어 뒀다.
국민의힘은 안 대표의 돌발 선언을 반기지도, 뿌리치지도 못했다. 선거 최대 무기인 '인지도'에 '중도 브랜드'까지 갖춘 안 대표는 선거전의 흥행 카드다. 그러나 국민의힘 후보가 아닌 안 대표가 서울시장을 차지할 가능성을 열어 두는 것은 다른 문제다. 정치적 야망이 큰 안 대표가 야권 후보 단일화를 거부하면, 보수 진영 표 분산으로 더불어민주당이 서울시장을 수성하고 차기 대선의 전세도 민주당으로 쏠릴 것이다.
안 대표의 서울시장 도전은 세번째다. 2011년 보선에선 50%대의 높은 지지율을 누리고 있었음에도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게 후보를 양보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선 박 전 시장에게 졌다.
이번에 안 대표는 스스로를 '범야권 후보'로 규정하고 ‘정권 교체’를 들고 나왔다. 20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서울시장 선거 패배로 정권 교체가 불가능해지는 상황만은 제 몸을 던져서라도 막아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야권 단일 후보로 당당히 나서서 정권의 폭주를 멈추는 견인차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장 선거를 “문재인 정권의 무능과 실정을 종합 평가하는 선거”로 정의하기도 했다.
안 대표는 최근까지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을 일축하고 차기 대선 직행을 공언했다. 그러나 대선주자로 확실하게 뜨지 못하자 '유턴'을 결심했다. 지난 4월 총선 이후 한국갤럽의 대선주자 지지율 조사에서 안 대표는 2~4% 수준에 묶여 있었다. 서울시장 선거는 그에게 '교두보'가 될 수 있다. 스스로 '다음 대선은 없다'고 닫긴 했지만, 서울시장에 당선된다 해도 물리적으로 다음 대선 출마가 불가능한 건 아니다. 서울시장 야권 후보 경선 과정에서 보수 진영이 그를 재발견할 가능성도 있다.
안 대표의 등장으로 보수 야권의 서울시장 보선 판이 요동치게 됐다. 국민의힘에선 이혜훈ㆍ이종구ㆍ김선동 전 의원, 조은희 서울 서초구청장 등이 출사표를 던졌다. 나경원 전 의원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출마 가능성도 점쳐지고, 금태섭 전 민주당 의원도 범야권 후보로 출전이 유력한 상황이다. 안 대표의 참전으로 야권의 후보 경선은 ‘별들의 전쟁’이 됐다.
안 대표의 출전 방식으로는 ①국민의힘 입당 후 경선 참여 ②오픈 프라이머리 식의 통합형 경선 ③국민의힘 후보와의 1대1 단일화 등이 거론된다. 흥행은 담보돼 있지만, ①을 제외하면 국민의힘 후보의 승리를 보장할 순 없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안 대표를 향해 ‘당에 들어와 경쟁하라’고 요구했지만, 안 대표 측은 꺼린다. 야권 관계자는 “국민의힘에 조직 기반이 전혀 없는 안 대표가 입당을 염두에 두고 출마를 선언했겠느냐”고 했다.
안 대표의 후보 단일화 의지 자체도 변수다. 안 대표는 2차례의 서울시장 선거를 비롯해 2012년, 2017년 대선에서 중도 하차하거나 패배했다. 이번 선거는 사실상 마지막 정치 도전일 수 있다. “안 대표가 선거 완주에 욕심을 낸다면 야권 후보가 2명이 되는 최악의 상황이 될 것"이란 우려가 보수 진영에서 나오는 이유다.
다만 국민의당 핵심 관계자는 “완주를 고집하지 않는다”며 “2018년 지방선거와 달리 지금은 야권 단일화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안 대표의 등장으로 보수 진영의 이슈 장악력이 높아졌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배종찬 인사이트K 소장은 “선거는 결국 지지층이 얼마나 모이느냐의 싸움인데, 안 대표는 중도층을 끌어당기는 능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어떤 경선 과정을 거치든 후보 단일화 과정은 흥행 요소가 될 것”이라고 점쳤다.
'주자'로서의 안 대표 경쟁력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렸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서울시장 선거는 여당에 책임을 묻는 선거가 돼야 하는데, 안 대표는 국민의힘에서 거론되는 다른 후보들보다 정권의 책임을 선명하게 물을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평가했다. 반면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안 대표는 더 이상 차세대 리더가 아니며, 지난 8년 동안 기성 정치인이 됐다”며 “과거 4차례의 전국 단위 선거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승산이 높지 않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