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강제추행 등 혐의로 정종선 전 고교축구연맹 회장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이른바 '청부 수사' 의혹이 제기되자, 경찰이 해당 수사팀에 대한 수사 착수를 검토하고 있다.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소속 간부와 제보자와의 부적절한 유착 정황이 광역수사대에 포착되면서다. 검·경 수사권조정에 따라 내년 1월 국가수사본부 출범을 앞둔 상황에서 경찰 수사에 대한 불신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20일 경찰 등에 따르면 광수대는 지수대 A팀장이 정 전 회장 사건을 제보한 법무법인 사무장 B씨와의 교감 아래 수사를 진행한 단서를 잡고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 B씨는 축구계 내에서 정 전 회장과 충돌했던 C씨의 조력자로, 현재 광수대에서 변호사법 위반 등의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광수대는 지난달 압수한 B씨 휴대폰에서 A팀장과 사전 논의를 해가며 수사를 진행한 것으로 의심되는 문자 메시지와 사진 등을 다수 확보했다. A팀장은 지난해 2월부터 7월까지 정 전 회장 사건을 책임졌다. A팀장은 정 전 회장 수사가 한창일 때 B씨 등과 수차례 술자리를 함께 하고, 참고인 진술 등 수사상황도 실시간으로 B씨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와의 소통 차원에서 접촉해 수사했다고 보기 어려운 대화도 오갔다. 압수된 휴대폰에선 정 전 회장 관련 수사가 진행 중이던 지난해 중순쯤 B씨가 "마무리를 부탁한다, 나를 믿고 행동해라"는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보내자, A팀장이 "그 XX는 꼭 처단해야 한다, 아니면 내가 다친다"고 답장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 같은 사실은 광수대가 지난달 16일 B씨 휴대폰을 보관하고 있던 D씨를 증거인멸 혐의로 긴급체포, 해당 휴대폰을 압수하면서 밝혀졌다. B씨는 광수대가 본인과 서울시축구협회 간부에 대한 수사를 시작한 지난 6월 무렵 자신의 휴대폰을 D씨에게 맡긴 것으로 파악됐다.
휴대폰을 갖고 있던 D씨는 '경찰 유착 수사 정황이 담긴 B씨 휴대폰을 건네주겠다'며 정 전 회장 측에 접근해 5억원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휴대폰에는 B씨가 A팀장 외 다른 경찰서의 경찰과도 소통하며 초·중·고교 축구감독 관련 사건에 관여하면서 수사 정보를 파악한 정황도 담겨있었다.
광수대는 지난 11일 B씨 휴대폰에 대한 디지털포렌식을 마치고 관련 내용을 들여다보고 있다. 경찰은 수사방식의 적법성 또는 적절성 차원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될 경우, 감찰을 넘어 수사에 착수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광수대 관계자는 "구체적인 진행 상황과 수사착수 여부에 대해선 확인해주기 어렵다"고 답했다.
A팀장과 B씨는 정 전 회장 사건 이전부터 친분이 있는 관계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A팀장은 이날 본보에 "당시 체육계 성폭력 사건 관련 첩보 수집 단계에서 지인에게 제보를 받았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B씨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와 관련해선 "수사개시 직후부터 정 전 회장 쪽에서 청부수사를 주장하며 감찰·진정 민원을 제기한 상황이 부담스러웠다"며 "(문자메시지 내용은) 흔들리지 않고 혐의 사실을 밝혀내겠다는 취지"라고 했다.
B씨도 "공익제보자로부터 정 전 회장에 대한 제보를 받아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대가 없이 연결해준 것"이라며 "성폭력 피해자들을 조사받을 수 있게 해주는 등 제보자로서 도움을 줬지만 불법적 부분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한편 정 전 회장은 서울 언남고 축구부 감독 시절 학부모들로부터 축구부 운영비 명목으로 2억2,300만원 상당의 돈을 챙기고 학부모를 상대로 강제추행·유사강간 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정 전 회장은 지난 2월 구속된 뒤 7월에 보석으로 풀려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