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메르스 계획만 따랐어도... 병상·인력부족 없었다

입력
2020.12.2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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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 부족, 의료인력 부족, 역학조사관 부족.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불거진 문제다. 하지만 이 문제 모두 낯설지 않다.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신종플루) 때,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때 다 겪었던 문제여서다. 메르스 이후엔 '국가방역체계 개편방안'이란 것까지 내놨다.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병상, 인력 문제로 허둥대는 지금 정부의 모습은 '소 잃고 외양간조차 고치지 않았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1. 2009년 신종플루 "격리시설을 만들자"

2009년 4월부터 번지기 시작한 신종플루는 41명의 사망자를 냈다. 당시 국가지정 음압병상은 전국에 약 40여개뿐이었다. 그나마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를 겪으며 겨우 만들어둔 것이다. 이 때도 '환자급증→병상부족→인력부족' 사태가 발생했다. 국가위기단계가 최고인 '심각'으로 치솟았다.



이 사태는 치료제인 타미플루가 개발되면서 1년여 만에 마무리됐다. 그 뒤 정부는 국가지정입원치료병상(전 국가지정격리병상)을 '14개 병원, 452개 병상'에서 '19개 병원, 552개 병상'으로 확대하는 등의 대책을 발표했다. 100개 거점의료기관에 격리외래시설을, 이 가운데 30개 병원에는 격리중환자실도 만들기로 했다.

#2. 2015년 메르스 "공공영역이 커져야 한다"

6년 뒤 발생한 메르스는 신종플루 이상이었다. 치사율이 무려 20.4%에 달했다. 186명이 감염돼 38명이 사망했다. 신종플루를 겪었기에 국가지정입원치료병상이 전국 19개 병원에 598개(음압 118 병상·일반격리 480병상)가 확보돼 있었고, 지역거점병원도 전국 16개 시도 77개(격리외래진료실 71개소·격리중환자실은 32개소)가 마련됐다.


하지만 감사원 감사 결과 국가지정입원치료병상을 가진 병원 4곳은 감염내과 또는 호흡기내과 관련 전문의, 감염관리 전담인력이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또 서울·경기 지역 21개 지역거점병원 중 일부는 메르스 유행 전 사전승인 없이 시설을 변경하거나 일반환자를 치료하는 시설로 활용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어쩌다 한번 찾아오는 감염병에 대비하기 위해 인력과 돈을 들이는 데 인색했던 셈이다.

이로 인해 메르스 유행 당시 서울·경기 지역에서는 3개 지역거점병원만 감염병 관리기관으로 지정됐고, 혼자 써야 하는 음압격리병실이 부족해 다인실에 코호트 격리를 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3. 잊혀진 메르스의 교훈

결국 정부는 2015년 9월 1일 '국가방역체계 개편방안'을 내놨다. 돈과 인력의 문제라면 국가적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얘기였다. 국립중앙의료원을 '중앙감염병전문병원'으로 지정하고, 별도 감염병 전문센터를 설립하며, 국립대병원 등 공공의료기관을 중심으로 '권역별 전문치료병원'을 3~5개소 지정하겠다고 했다. 대부분 공중보건의였던 역학조사관을 정규직으로 대폭 확충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이듬해 나온 정부의 연구 용역 결과 중앙감염병전문병원에 138병상, 인천과 충청, 영남, 호남, 제주에 권역당 50병상이 필요하는 얘기가 나왔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2017년 국립중앙의료원이 중앙감염병전문병원으로, 조선대병원이 호남권 감염병전문병원으로 지정된 뒤 흐지부지됐다. 그마저도 조선대병원은 설계와 착공 지연으로 2023년에나 문을 연다. 국립중앙의료원도 부지 이전 문제로 몸살을 앓다 최근에야 서울 중구 미 공병단 부지로 확정했다. 2025년까지 신축이전할 계획이다.

역학조사관 대부분도 여전히 2년직 계약직이다. 2018년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중앙 정부에 30명 이상, 각 시·도에 역학조사관 2명 이상(1명은 의사)을 두도록 했다. 내년부터는 같은 법의 개정에 따라 질병관리청 소속이 100명 이상으로 늘어난다. 다만 현재 정원은 질병관리청 소속 77명, 시·도에 53명 등 총 130명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지난달 초까지 27명이 결원 상태였다.


#4. 코로나 19 이후, 감염병은 또 온다

코로나19 확산을 맞아 정부는 대형병원에 병상동원 행정명령을 내렸고 의대생 국가고시 재응시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병상, 인력부족이 현실화한 탓이다. 전문가들은 보다 근본적인 대응책을 고심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감염병은 순간적으로 들어와 휩쓸고 지나간 뒤 사라진다. 병의 특성상 대비하려는 비용 대비 효과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대비하지 않았다가는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한다. 이런 감염병은 6~10년에 한번씩 찾아온다. 감염병 없다고 안심할 게 아니라 평소 체계를 잘 갖춰 놔야 한다. 윤강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건의료연구센터장은 "감염병 대응을 위해 공공의료기관에는 자원 확충 의무화와 착한 적자를 통한 보전을, 민간의료기관에는 참여 유도를 위한 일정 수준의 손실 보전 등 제도적 보완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진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