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설립과 활동을 방해한 혐의로 1심에서 유죄를 받았던 이병기(73)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54)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2심에서는 무죄를 받았다.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 구회근)는 17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된 이 전 실장, 조 전 장관, 김영석(61) 전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한 1심을 깨고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안종범(61)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1심의 무죄 판결이 그대로 유지됐다. 윤학배(59) 전 해수부 차관은 1개 혐의만 유죄로 인정돼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형이 줄었다. 그는 1심에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조 전 수석은 2015년 1월 해수부 고위관계자를 직접 만나 특조위의 예산과 조직을 축소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전 실장과 안 전 수석은 특조위가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을 조사하려 하자, 해수부 실무자들에게 이를 막기 위한 기획안을 마련하고 실행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파악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런 사실 관계는 인정하면서도, 직권남용죄의 성립은 좀 더 엄격하게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직권남용으로 인해 상대방이 ‘의무 없는 일’을 했다고 인정하려면, 상대방의 직무집행 기준과 절차가 법령에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어야 하고, 상대방에게 직무집행에 관여할 수 있는 고유한 권한과 역할이 부여돼 있어야 한다”고 전제했다. 이어 "그러나 이 사건에서 직권남용의 상대방인 청와대ㆍ해수부 소속 공무원들의 직무집행 기준과 절차가 법령에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고, 공무원들에게는 직무집행에 관여할 수 있는 고유한 권한과 역할도 없다”고 했다.
재판부가 유일하게 유죄로 인정한 것은 당시 청와대 해양수산비서관이던 윤 전 차관이 특조위 파견 공무원들에게 단체 채팅방으로 특조위 내부 동향을 파악해 보고하게 한 부분이었다. 재판부는 “세월호진상규명법은 특조위의 정치적 중립성, 업무의 독립성, 객관성을 규정하고 있는데, 윤 전 차관으로 인해 파견 공무원들은 법에서 규정한 직무수행 과정에서의 원칙과 기준, 절차를 위반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위원회가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활동을 마치게 된 것은 당시 박근혜 청와대와 정부 여당의 각종 방해나 비협조 때문이지, 유죄로 인정된 윤 전 차관의 활동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이 부분을 양형에 참작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