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에서 가장 오래되고 굳건한 믿음 중 하나가 황금비(golden ratio)에 대한 이론이다. 파르테논 신전과 피라미드, 밀로의 비너스, 다비드, 모나리자 등이 황금비율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균형과 조화, 완벽한 미를 보여 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너무나 광범위하게 퍼져 상식이 되었지만, 사실 황금비가 있다고 알려진 상당수의 사례는 신화에 불과하다.
황금비란 무엇인가? 아래 도표처럼 직선을 둘로 나누는 경우, 긴 부분(a)과 짧은 부분(b) 길이의 비가 전체(a+b)와 긴 부분(a) 길이의 비와 같도록 분할할 때, 짧은 선분 대 긴 선분 길이의 비는 약 1 : 1.618이 된다. 바로 이 근사치를 황금비라고 한다.
그렇다면 정말 다비드와 밀로의 비너스는 1 : 1.618의 황금비가 적용될까? 스탠포드 대학의 수학과 교수인 키스 데블린은 황금비가 거짓말이며 지어낸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제까지 이들 조각상의 머리에서 배꼽까지의 길이 대 배꼽에서 발까지의 길이의 비는 1 : 1.618로 알려져 왔다. 실제로 측정해 보면 다비드가 1 : 1.535, 밀로의 비너스는 1 : 1.555이다. 황금비가 아닌 것이다.
모나리자는 어떨까? 모나리자 얼굴의 폭과 길이의 비, 혹은 턱에서 코밑까지와 코밑에서 눈썹까지 길이가 1 : 1.6이므로 황금비율이 있다고 하지만, 실은 황금비 추종론자들이 의도를 가지고 그림에 임의로 그은 선에서 비롯된 가짜 수치다. 또한, 1.6은 비슷한 수치일 뿐 황금비도 아니다. 찾으려고 든다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비율이다. ‘최후의 만찬’과 ‘비트루비우스적 인간’에서도 황금비는 보이지 않는다. 레오나르도는 미술가들이 오랫동안 써 왔던 5 : 8 정수비를 사용했을 따름이다.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 역시 황금비가 있다고 알려진 대표적인 사례다. 사실 이집트 전 지역에 있는 70여 개의 피라미드 중에서 황금비에 가까운 것은 쿠푸왕의 피라미드 하나뿐이다. 이 대피라미드의 경우, 옆면을 이루는 삼각형의 높이와 밑면인 정사각형의 한 변의 길이의 반의 비를 구하면 약 1.618가 된다. 그러나 우연히 황금비에 근접하는 수치로 지어진 것일 뿐, 처음부터 이 비율을 염두에 두고 정교한 설계도에 의해 건설된 것은 아니다. 쿠푸왕의 피라미드(BC 2560년경)보다 약 천 년 후에 나온 수학책 '아메스 파피루스'(BC 1650년경)에도 사칙연산과 분수, 원과 삼각형 넓이 구하기, 피라미드 부피 구하기 등 매우 흥미로운 수학적 지식이 기록돼 있으나 비율, 또는 황금비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이 사료는 대피라미드를 건설한 당시 이집트에 황금비를 계산할 만한 수학적 지식이 없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따라서 고대 이집트인이 황금비를 사용해 피라미드를 지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다.
파르테논 신전은? 신전에 황금비가 있느냐 없느냐 논란이 일자, 아테네 국립기술대학교의 건축학 교수, 고고학자, 토목공학자, 미술사학자 등으로 이루어진 파르테논 신전 복원연구팀이 정밀하게 측정해 보기로 했다. 그 결과, 기단의 상단부터 돌림띠(기둥 상단의 장식)까지의 높이와 신전 정면의 가로길이가 각각 13.73m, 30.88m로 그 비율은 1 : 2.249이었고, 지붕 꼭대기까지 높이와 가로길이는 각각 19.73m, 30.88m로 1 : 1.565였다. 둘 다 황금비율이 적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파르테논 신전에서 그나마 황금비가 있는 곳은 지붕과 기둥 사이 2단으로 장식된 돌림띠의 한 부분뿐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황금비 신화가 만들어진 것일까? 황금비 1 : 1.618은 BC 300년 그리스 수학자 유클리드가 수학 지식을 집대성한 '원론'에서 비율에 대한 내용을 언급할 때 ‘양끝과 부분의 비’라는 개념을 소개하면서 등장한다. 16세기 이탈리아의 수학자 루카 파촐리가 이것을 다시 ‘신성한 비율(De Divina Proportione)’로 표현했는데, 전혀 미학과 연관된 의미로 쓴 것은 아니었다. 또한, 후세 사람들은 레오나르도가 친구였던 파촐리의 영향을 받아 그의 작품에서 황금비를 사용했다고 추론했지만 사실과 다르다.
한편, 알프레히트 뒤러는 ‘신성한 비율’을 예술 작품에 접목하려고 했고, 요하네스 케플러는 이 비율이 천체 운동에 실재한다고 생각했다. 19세기 독일 수학자 마틴 옴이 이것을 황금비라고 일컬으면서 비로소 용어가 탄생했고, 동시대 독일 심리학자 아돌프 차이징은 황금비 이론을 대중화한다. 아돌프 차이징은 황금비가 자연과 예술 영역 모두에 존재하는 보편적 법칙이며, 이 비율에서 완벽한 아름다움이 나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학설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신화의 토대가 되었다. 이후, 미술평론가들은 건축물과 예술에서 황금비를 찾으려 했고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었다. 이런 가운데 1 : 1.618이라는 비율은 점차 단순히 수 이상의 신비주의로 포장되었고, 예술품들은 수학의 후광을 입어 종교적 숭배의 대상으로 격상했다.
여행 가이드들은 파르테논 신전 앞에서 황금비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비율 때문에 고대 신전이 멋지게 보인다고 생각한다. 교과서에는 정론으로 실리고, 수학자들조차 예술품에서 나타나는 황금비에 대해 글을 쓰고 강연한다. 해외의 한 의류 업체에서는 황금비를 가진 청바지를 제작했다고 주장하며 돈벌이에 이용하기도 했다. 이 청바지를 입으면 황금비 몸매로 보일 것이라고 기대한 수많은 여성들이 구매했지만, 물론 그런 신통한 바지는 있을 리 없다. 어떤 성형외과 의사들은 미남미녀의 얼굴이 황금비를 갖고 있어서 아름답다고 말하기도 한다. 객관적 근거가 빈약한 공허한 주장이다. 미의 기준은 매우 다양하다. 수학적 비율을 만족하는 얼굴이 가장 완벽하다는 견해 자체가 넌센스다. 명함이나 담뱃갑, 신용카드, 트럼프, HDTV, 애플사 로고에 황금비가 사용되었다는 통설 역시 엉터리다.
물론 자연의 세계와 미술품 중에서 종종 황금비가 발견되기도 한다. 해바라기 꽃씨의 나열, 솔방울 비늘 조각에서는 피보나치 수열과 황금비가 나타난다(앵무조개에 황금비가 있다는 설은 거짓이다). 20세기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는 건축에서,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최후의 만찬 성사’에서 황금비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황금비는 세상 모든 것에 적용되는 신비롭고 성스러운 비율이 결코 아니다. 특히, 인류의 위대한 건축물이나 걸작 예술품들에 있다고 믿었던 황금비는 합리적인 방식의 측정 결과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졌다.
황금비는 일종의 사이비 과학이지만 여전히 종교적 믿음의 영역 안에 있다. 왜 이렇게 오랫동안 신화가 지속되어 온 것일까? 인간은 세상에서 어떤 패턴을 보고 의미를 찾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에 질서와 명료함을 부여하고, 무의미한 것을 유의미한 것으로 바꾸고 싶어 한다. 미학적 체험은 근본적으로 임의적이고 주관적인 것이지만, 수학적인 것을 갖다 붙여 객관적 아름다움의 근거로 내세우는 이유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황금비 찬가를 부른다. 천문학자이자 과학 저술가인 마리오 리비오를 비롯한 적지 않은 과학자, 수학자들이 황금비가 거짓이라는 것을 이미 증명했지만, 견고한 신화의 아성은 무너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황금비는 신의 솜씨가 아니라 인간이 창조한 신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