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유물 약탈' 논란 속 개장한 독일 박물관

입력
2020.12.18 05:00
1조 들인 베를린 훔볼트포럼 온라인 개관
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 유물 2만점 소장
"전시물 도둑맞고 약탈"... 반환 요구 거세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전면 봉쇄 조치에 들어간 독일에서 때아닌 ‘문화재 약탈’ 논란이 일고 있다. 수도 베를린 한복판에 문을 연 대형 박물관의 소장 유물이 실상은 과거 아프리카 식민지의 유산을 빼앗았다는 것이다. 지속적인 반환 요구에도 독일 측은 모르쇠로 일관해 '제국주의 청산' 논쟁이 가열될 전망이다.

영국 BBC방송과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DW)는 16일(현지시간) 독일 ‘훔볼트포럼’ 박물관의 개장 소식을 전했다. 다만 “약탈 문화재에 대한 비판 속에”란 단서를 달아 순탄치 않은 출발을 알렸다. 독일이 이날부터 코로나19 확산에 대응한 전면 봉쇄조치에 들어간 탓에 박물관은 온라인으로만 개관했다.

베를린에 위치한 이 박물관은 옛 프로이센 왕궁을 재건축 한 것으로 재건에만 6억8,000만유로(9,088억원) 규모의 엄청난 자금이 투입됐다. 모니카 그뤼터스 독일 문화장관은 “유럽에서 가장 큰 문화 프로젝트”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지의 자부심과 달리 훔볼트포럼은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박물관에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오세아니아 지역에서 들여온 유물이 2만점이나 있는데, 죄다 약탈했다는 게 문제다. 가장 논란이 되는 전시품은 지금의 나이지리아 남부에 있던 옛 베냉 왕국의 ‘베냉 청동상’이다. 1897년 영국은 베냉을 식민지로 삼으면서 각종 청동상을 무단으로 가져갔다. 현재 독일뿐 아니라 영국, 프랑스 등 세계 각국의 박물관에 작품들이 산재해 있다. BBC는 “수천 개의 놋쇠, 청동, 상아조각품 등 문화재가 베냉 왕궁에서 반출됐다”면서 “이 가운데 180점이 내년 훔볼트포럼에서 전시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당연히 나이지리아 정부는 독일 정부와 박물관 측에 청동상 반환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최근 유수프 투가르 독일 주재 나이지리아 대사는 그뤼터스 장관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 유물 반환을 촉구하는 친필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물론 답장은 받지 못했다. 독일의 태도는 베를린 공공 박물관을 관리하는 프로이센문화재 재단 답변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재단 대변인은 방송에 “공식적인 송환 요청이 접수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독일 측이 공식 송환 절차를 밟을 생각조차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박물관 개관을 계기로 약탈 문화재 반환 여론은 점점 거세지고 있다. DW는 이날 “아프리카 문화 유산 중 최소 80%가 유럽 박물관에 있다”며 “그간 식민 열강의 재산으로 여겨졌지만 최근 들어 기류가 바뀌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독일 역사학자와 인종차별 반대 운동가들은 유물을 손에 쥔 경위를 공개하라며 박물관 측을 압박하고 있다. 비정부기구(NGO) 베를린포스트콜로니얼 설립자인 음냐카 수루루 음보로는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많은 전시물이 도둑맞고 약탈당했다”면서 “일부는 종교의식과 기도에 사용된 것인데, 이는 마치 교회에서 제단을 가져가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주장했다.

독일 일간 타게스 슈피겔은 “투가르 대사가 박물관 개관에 맞춰 이 문제를 다시 꺼내든 것은 나이지리아 측이 독일 정부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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