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취임하고 사의를 표명하기까지의 11개월은 '윤석열과의 갈등사'와 다름 없다. 취임 5일만에 윤석열 검찰총장 측근들을 대거 좌천시킨 인사를 단행했고, 윤 총장 징계가 확정된 당일 마치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는 듯 사의를 표시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일가 관련 의혹으로 물러난 뒤, 문재인 대통령은 추 장관을 임명하며 검찰 개혁 드라이브를 더욱 강하게 걸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5선 의원이면서 여당 대표까지 지낸 거물인사였기에 한 부처만 맡기기에 적당하지 않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그 맞상대가 바로 '윤석열'이었기에 추 장관의 돌파력이 어느 때보다 더 필요하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추 장관은 임기 내내 윤 총장의 검찰 내 입지를 약화시키고, 윤 총장의 영향력을 축소하며, 윤 총장이 추진하는 수사 등에 제동을 거는 일에 힘을 모았다. 1월 3일 공식 취임한 추 장관은 1월 8일 곧바로 검사장급 32명의 인사를 내며 윤 총장의 수족들을 거침없이 잘라냈다. '윤석열 사단'은 사실상 와해됐다. 그리고 친정부 성향인 이성윤 법무부 검찰국장을 검찰 내 최고 요직인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중용하며, 검찰 내에 세력 교두보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윤 총장에 대한 본격적 공격은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 사건이 불거지면서 이뤄졌다.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와 한동훈 검사장 유착 의혹 보도가 나온 뒤 4월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는 해당 의혹 고발 사건 수사에 착수했다.
이 사건 처리를 두고 서울중앙지검과 대검이 불협화음을 내자 추 장관이 전격 개입했다. 올해 7월 2일 추 장관은 헌정 사상 두 번째로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이 수사에 대한 윤 총장 지휘권을 박탈했다. 윤 총장은 전국 고검장ㆍ검사장 회의를 소집하는 등 맞대응하려 했지만 강경한 입장을 고수한 추 장관에게 일주일 만에 결국 백기를 들었다. 8월 검찰 인사 때 추 장관은 재차 윤 총장의 힘을 빼는 인사를 실시했다.
이 때까지 추 장관의 공세가 윤 총장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다면, 10월부터는 윤 총장을 곧장 겨냥한 공격이 이어졌다. 라임자산운용 사건에 연루된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현직 검사를 상대로 술 접대를 했다는 의혹이 나오면서, 검찰과 윤 총장에 대한 추 장관의 태도는 매우 강경해졌다. 정치권 인사들에 대한 수사 협조를 사실상 압박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다. 10월 19일 추 장관은 라임 사건과 윤 총장의 장모 및 부인 관련 사건 등에 대한 수사 지휘권을 내려놓으라며 2차 수사지휘권을 행사했다.
공개석상에서 윤 총장을 직접 비판하며 압박하는 일도 주저하지 않았다.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추 장관은 “법무부 장관은 검찰총장에 대한 지휘ㆍ감독권이 있다”고 주장하며 앞서 대검 국감에서 “법리적으로 총장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고 했던 윤 총장의 주장에 공개 반박했다.
이어 유례가 드문 검찰총장에 대한 직접 감찰 카드를 사용해 지난달 24일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직무배제ㆍ징계청구를 감행했다. 법원이 직무배제가 위법하다고 결정했고, 전국 대부분 검찰청에서 평검사회의가 열리는 등 검찰 내 반발이 거셌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다 16일 법무부 검사징계위가 윤 총장에 대한 ‘정직 2개월’을 의결하자, 이를 문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자리에서 사의를 표명했다.
추 장관은 이날 오후까지만 해도 검찰개혁 완수 의지를 밝히는 등 업무를 계속하겠다는 뜻을 시사했기에, 그의 사의 표명은 전혀 예상되지 않은 일이었다. 법무부 참모들도 청와대 발표를 듣고서야 깜짝 놀랐을 정도로 극소수 측근만 알고 있었다고 한다.
외견상 추 장관이 사의를 표명한 것은 그가 취임하면서 목표로 삼았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의 제도적 개혁 과제가 사실상 완성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다만 추 장관이 공교롭게도 윤 총장 징계 확정일에 사의를 표했다는 점으로 미루어, 내심 제도 개혁보다 더 우선으로 삼았던 '인적 청산'이 사실상 성공한 상황에서 더 이룰 것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힘을 받는다.
윤 총장과의 갈등이 길어지며 여론과 여권 일부에서 추 장관에 대한 피로감이 쌓였다는 점도 이유로 거론된다. 일각에서는 그동안 여권에서 추 장관과 윤 총장의 동시 교체 기류가 강했던 상황에서, 추 장관에게 유무형의 사퇴 권고가 있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