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기 옆에서 밥 먹고 쥐까지 출몰"… 아파트 청소 노동자의 휴게실

입력
2020.12.1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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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비정규직지원센터 실태조사 결과 
청소 노동자 53% “지하 휴게실” 고통 호소

“악취는 기본이고, 쥐들까지 나타나 휴식시간이 오히려 고통스러울 지경이에요.”

지난 15일 경기 파주시 아파트의 70대 여성 청소노동자 A씨는 “나이 많은 여성들이 견디기 힘든 지하 휴게실의 열악한 환경이 나아지지 않고 있다”라고 하소연했다. 그가 점심을 먹기 위해 매일 찾는 휴게실은 지하 주차장 한 켠에 패넬로 임시 벽을 만든 가건물이다. 6.6㎡도 안 되는 비좁은 공간에 환기시설도 없어 습하고 쾨쾨한 냄새도 난다.

인근의 또 다른 아파트 청소노동자 휴게실도 마찬가지였다. 엘리베이터 옆 철문을 지나 지하 계단으로 내려 가니, 지름이 30㎝나 되는 오수관 등이 어지럽게 연결된 방이 있었다. 시멘트 벽면이 그대로 드러나 있고, 바닥엔 각종 오염수가 흘러가는 배수로도 보였다. 환기시설은커녕 소방장비도 없었다. 한눈에 봐도 사람이 오래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60대 청소노동자 B씨는 “햇빛도 안 들고 환기도 안 돼 냄새가 심하고, 각종 배관에서 나오는 소음 탓에 휴식은커녕 점심 한 끼 먹는 것도 곤욕”이라고 말했다.

공동주택(아파트) 청소노동자의 상당수가 여전히 열악한 지하 공간에서 식사와 휴식을 취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실태는 파주시비정규직지원센터가 12일 내놓은 ‘파주 아파트 경비·청소 노동자 노동 실태 조사 보고서'에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이번 조사는 파주의 132개 아파트 단지 경비·청소 노동자 413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조사 결과 청소 노동자 53%는 지하에 휴게공간이 있다고 답했다. 아예 없는 경우도 3%나 됐다. 지하 휴게실은 주차장 짜투리 공간이나 기계 설비실, 전기 배전실 등에 패넬로 벽을 세워 만든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바닥엔 전기장판이나 돗자리 등이 깔려 있고, 중고 식탁과 소파 등이 놓여 있다. 휴게실이 전기 배전실 등에 설치되면서 노동자의 안전사고 위험도 적지 않다.

조사 과정에서 한 노동자는 “지하실에 휘발성 화합물질이 쌓여 있어 코를 찌르는 냄새 탓에 머리가 아프고 피부도 따가울 정도”라고 말했다.

경비노동자 휴게실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휴게공간이 지하에 있다고 답한 노동자는 청소노동자보다 적은 31%였지만, 경비초소 한쪽을 휴게실로 쓰다 보니 공간이 비좁은 사례가 많았다. 심지어는 전자레인지 등 조리기구 옆으로 화장실 변기가 설치돼 있어 변기 옆에서 식사를 해야 하는 휴게실도 2곳이나 있었다.

전문가들은 실태조사가 이뤄진 파주 뿐 아니라 다른 지역 아파트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지적한다. 이재희 파주시 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장은 “산업안전보건법상 휴게실은 설치 의무만 있을 뿐, 구체적 기준이 없어 법 개정을 통해 세부규칙이 마련돼야 한다”라며 “노동자 권익을 존중하는 입주민들의 인식 전환도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이종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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