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고 싶은 우리말

입력
2020.12.16 04:30
25면


대학생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우리말’이 무엇인지 물었다. ‘우리, 이모, 식구, 잘 먹겠습니다, 밥심, 책거리, 이사떡, 이웃, 정’ 등이 나왔다. 가만히 들여다 보니 공통점이 보인다. 모두 음식을 나누는 사람들과 관련된 것이다. 한솥밥을 먹는 ‘식구’, 먹기 전에 할 인사가 그러하다. 이웃과 나누지 못한다면 존재의 의의가 없을 ‘이사떡’도, 부르는 말 ‘이모’도 나눔으로 소환된 말이다. ‘밥심’으로 사는 한국인의 인사는 밥으로 시작해서 밥으로 끝난다. ‘밥 먹었어?’, ‘밥은 먹고 다니니?’, ‘같이 밥 한 번 먹자.’, ‘다음에는 내가 꼭 밥 살게!’는 같은 듯하지만 다른 인사말이다.

‘우리’는 한국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도 주목한 표현이다. 1890년에 언더우드가 쓴 '한영문법'은 외국인이 한국어를 배우도록 쓴 문법서이다. 이 책에서 언더우드는 한국말 ‘우리’를 영어로 상세하게 풀이했다. ‘우리란 말에는 여럿이라는 뜻뿐만 아니라 다른 의미도 있다. 한국인이 우리 집, 우리 아내라 하면 그것은 내 집, 내 아내의 공손 표현으로 이해해야 한다’라고 썼다.

학기가 마무리되는 때라 그런지, 여러 말 가운데 유독 ‘책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책거리’ 또는 ‘책씻이’는 책 한 권을 다 뗀 학생이 스승, 동료와 떡을 나누는 일로, 이 말에는 학생의 뿌듯함과 스승의 보람, 그리고 없는 살림살이에도 떡을 마련하신 어머니의 흐뭇함도 담긴다. 오늘은 이 어려운 때에 학업을 잘 마친 학생들과, 바뀐 환경을 이겨 내며 교육 현장을 훌륭히 지킨 이 땅의 많은 스승들과 함께, 책거리 떡을 마음으로 나눈다.

이미향 영남대 국제학부 교수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