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거대 정보기술(IT) 기업의 반(反)독점 규정 위반 행위에 마침내 칼을 빼들었다. 앞으로 IT기업이 EU의 경쟁 관련 규정을 위반하면 연간 매출액의 10%를 벌금으로 내야 한다. 사실상 페이스북, 구글, 애플 등 미국 빅테크(초대형 기술기업)를 정조준 한 건데, 이들 기업의 연간 매출이 수백 조원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타격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14일(현지시간) AFP·로이터통신에 따르면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IT기업이 EU의 반독점 규정을 위반할 경우 연 매출액의 10%를 벌금으로 매기는 내용의 법안을 15일 공개한다. 이른바 ‘디지털 시장법’으로 불리는 해당 법안에는 EU 27개 회원국에서 영업하는 IT기업이 공정 경쟁 환경을 보장해야 한다는 규정이 담겼다.
로이터는 “EU는 빅테크 기업을 ‘게이트키퍼(문지기)’로 규정한다”고 설명했다. 게이트키퍼는 EU 내 이용자수와 매출, 시장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 선정되는데, 시장점유율 등을 감안하면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애플 같은 미 실리콘밸리 공룡기업들이 우선 포함된다.
게이트키퍼에 선정된 기업은 특정 종류의 자료를 경쟁 업체 및 규제 기관과 공유해야 하고, 자체적인 데이터 결합을 통한 서비스 독점이 금지된다. 또 인수ㆍ합병(M&A)에 앞서 이를 EU 측에 알려야 한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매출액의 10%를 벌금으로 부과하는 식이다.
EU 집행위는 지난달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을 상대로 반독점 규정 위반 혐의를 제기하고 조사를 시작했다. 만일 법이 성안되고 아마존이 해당 법을 위반한 것으로 결론나면 지난해 매출(2,800억달러)의 10%인 280억달러(30조6,700억원)를 토해내야 하는 셈이다. 앞서 티에리 브르통 EU 디지털담당 집행위원은 “거대 IT기업들이 규정을 반복적으로 위반할 경우 EU 안에서의 사업을 끝낼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EU 규제당국의 이번 조치는 IT 공룡기업들의 지배력 남용을 막는 동시에 이들 업체가 사업 관행을 바꾸고 불공정 경쟁을 하지 못하도록 유도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전문가들은 법안이 시행되면 IT기업들이 이전처럼 플랫폼을 장악하고 시장에서 우위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법안은 향후 EU 회원국과 유럽의회 승인을 거쳐야 하는 만큼 체제를 갖추기까지는 수개월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