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균이들이 일하다 죽지 않게'... 굶으며, 떨며 엄마는 싸운다

입력
2020.12.14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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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기온이 영하8도를 가리킨 14일 오전 7시. 지퍼를 꽁꽁 잠근 패딩에 모자를 푹 뒤집어 쓴 김미숙(52)씨가 국회 본청 앞 텐트에서 비틀비틀 나왔다. 전기 장판과 침낭, 핫팩에 의지해 밤을 보낸 그의 손은 얼음장이었다. 추위에 곱은 손으로 마그밀 네 알을 물과 삼켰다. 오랜 단식에도 속이 덜 쓰리게 하는 약이다. “매일 500ml짜리 물을 다섯 병쯤 마셔요. 효소를 타서 먹고, 소금도 한 번씩 먹고요.” 목소리가 이내 잦아들었다.

김씨는 아침에 일어나 텐트에 몸을 누이는 밤9시 30분까지 종일 야외 비닐부스를 지킨다. 비좁은 부스엔 벽이 없다. 칼바람에 전기난로도 무소용이다. 비닐 가리개라도 치지 않은 건 본청을 드나드는 국회의원들에게 ‘김용균 엄마, 내가 여기 있다’고 온몸으로 일러주기 위해서다. “나를 봐서라도, 이번만큼은 제대로 된 법을 만들어서 사람을 살려 줘야만 해요.”

2018년 12월10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석탄 운반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25세 비정규직 하청노동자 김용균. 아들 대신 아들 이름이라도 지키려고 김씨는 11일부터 나흘째 곡기를 끊었다. 수많은 용균이들에게 억울한 죽음이 어른거리지 못하도록, 스스로를 죽음 가까이로 내모는 중이다.

“남들 단식 하는 거 볼 땐 뜯어말리고 싶었어요. 내가 하게 될 줄은 몰랐네요.” 평생 '밥 안 굶는' 것만 생각하며 살아 온 김씨에겐 '밥 잘 굶는' 요령이 없었다. 거무죽죽한 눈가, 벌겋게 부어오른 손, 부르튼 입술이 고된 일분일초를 보여주고 있었다.


김씨가 요구하는 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 제정이다. 산업재해를 막지 못한 기업과 사업주를 엄벌하는 법이다. 김씨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겠다며 국회는 2년 전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그러나 기업과 원청 목소리를 너무 많이 들은 탓에 누더기가 됐다. 남은 희망은 중대재해법이다.

‘일하다 죽지 않을 권리’를 제대로 보장할 법을 만들어달라는 너무도 당연한 호소에 국회가 2년이나 응답하지 않을 줄, 김씨는 몰랐다. 아들 잃은 어머니의 울부짖음마저 국회가 외면할 줄, 까맣게 몰랐다. 올해 8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중대재해법 연말 처리 의지를 밝히고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바로 호응했을 땐 희망이 보였다. 그러나 9일 끝난 정기국회에서 중대재해법은 제대로 논의되지도 못했다.

민주당은 10일 '중대재해법을 내년 1월 10일 끝나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겠다'고 고쳐 약속했다. 14일엔 박병석 국회의장, 이낙연 대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단식장을 찾아 다시 한 번 손을 걸었다. 그러나 김씨에겐 '하루'가 급하다. "이번에도 다들 '하겠다'고만 하네요. 올해가 지나면 선거철인데, 선거에 또 밀리고 밀릴텐데…”

시간에 쫓겨 너무 헐거운 법이 나오는 건 아닌지, 김씨는 또 걱정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엔 여야 의원들이 각자 발의한 중대재해법 제정안들이 올라 있다. 원청 책임을 어디까지 물을 건지, 과실 입증 책임은 누구에게 지울 건지, 담당 공무원의 책임은 어디까지 인정할건지 같은 각론을 놓고 의견이 저마다 다르다.

민주당은 50인 미만의 사업장엔 4년 유예하는 중대재해법안을 14일 국회에 냈다. 김씨와 정의당은 “산업재해 사망사고의 85%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나오는데, 무조건 유예는 안 된다”고 반대한다. 민주당은 17일 정책 의원총회에서 중대재해법 쟁점 조항들에 대한 입장 정리를 시도한다. 민주당이 뜻을 모을 때까지 김씨는 떨며, 굶으며 여러 밤을 보내야 한다. 몇 밤이 될지 알 수 없다.

"땅땅땅." 국회의장이 의사봉을 두드려 중대재해법 제정안 의결을 선포하는 소리를 김씨는 꿈결에 듣는다. 용균씨에게도 가닿을 거라 믿는다. “내가 이렇게라도 해서라도 사람들을 살릴 수 있다면, 나는 할 거예요.” 스러지지 말자, 그는 다짐했다.

이서희 기자
조소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