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에 면죄부를 준다’는 비판에도 정부가 환경정화 비용을 일단 떠안은 채 미군기지 12곳을 돌려받기로 한 건 왜일까.
정부는 무엇보다 '현실적 판단'을 앞세웠다. 정화 비용 문제로 반환이 이미 오래 지연된 상황에서 시간을 끌수록 손해를 보는 건 한국이다. 주둔한 각국에 정화 비용을 전가하는 건 미군의 일관된 태도다. 미군은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에 따라 ‘기지 반환 시 오염 정화 의무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주한미군의 선의를 마냥 기다리다가는 오염이 확산돼 주민 고통이 배가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비용 협상을 이유로 기지 반환이 지연된 게 10년이 넘었다. 그 사이 기대 심리로 땅값이 올라 지방자치단체의 매입 예상 비용이 치솟았다.
일각에선 내년 1월 초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을 변수로 꼽는다. 정부가 지난해 8월 “반환되지 않은 주한 미군기지 26곳의 조기 반환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할 당시엔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상(SMA) 카드로 쓰려 한다는 관측이 있었다. 트럼프 정부가 원래 분담금(1조389억원)의 5배 인상을 요구하는 데 맞서 한국이 정화 비용으로 맞불을 놓을 거라는 시나리오였다.
"폭력단 갈취 행위처럼 동맹을 대우하지 않을 것”이라는 바이든 정부 출범으로 방위비는 한미가 잠정 합의한 13% 증액안을 존중하는 선에서 타결될 가능성이 커졌다. 기지 정화비용이 방위비 인상 대응 카드로서 효용이 떨어졌다는 얘기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으로부터 정화 비용을 받아낼 수 없다면 SMA 카드로 활용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기지 반환은 방위비 분담금 협상과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정부는 11일 한미 협상을 통해 미군기지 12곳을 반환받는다고 발표했지만, ‘선(先) 반환, 후(後) 비용 청구’ 방침은 그대로였다. 미군기지 반환은 SOFA에 따라 ‘협상 개시→반환 조건ㆍ시기 협의→환경 협의→반환 승인’ 절차를 밟는데, 협상이 진척되지 않자 정부는 ‘환경 협의’를 건너뛰고 반환에 합의했다. 정부는 지난해 말 4개 기지를 돌려받으면서 “환경 오염 책임과 비용은 앞으로 한미 간 협의를 통해 해결하겠다”고 했지만, 별다른 진전은 없었던 셈이다.
정부는 11일 “오염 정화 책임과 비용은 앞으로 한미 간 협의를 계속하면서 해결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했다. 지금까지 정부가 쓴 정화 비용은 2,200억원으로, 향후 비용까지 포함하면 1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오염 정화 대상 기지에선 맹독성 발암물질인 다이옥신 등이 검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