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부 '한 방' 없어도 '58 초선'의 힘으로 뭉친 국민의힘

입력
2020.12.1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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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 '더불어민주당에 끌려다닌다'는 비판을 산 국민의힘이 초선 의원들의 '패기'로 고비를 넘고 있다. 당 지도부 차원의 전략 부재를 초선 58명의 투쟁으로 돌파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쟁점 법안 입법 독주에 항의하는 필리버스터가 동력을 얻은 것도 국민의힘 초선 전원이 필리버스터를 하기로 결의한 덕분이었다.

연공서열을 유난히 중시하는 보수 정당에서 초선은 '선배' 의원들의 지시를 묵묵히 따르는 존재였는데, 문화가 확 바뀐 것이다.

대여 투쟁 선봉에 선 21대 초선

13일 국민의힘 초선 의원들이 모인 카카오톡 방에는 "윤희숙 의원의 12시간 47분 필리버스터가 온 국민의 심금을 울렸다" "박형수 의원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과 국가정보원법 개정안의 핵심 맹점을 찔렀다" 같은 셀프 칭찬글이 여럿 올라왔다. "21대 국회 초선들의 투쟁 열기가 20대보다 훨씬 뜨겁다"는 재선 의원들의 칭찬도 전해졌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를 하면 '오합지졸'이 될 걸로 생각했을 것"이라며 "초선들 사이에서 우리도 '하면 된다'는 긍정적 기운이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윤석열 검찰총장 직무 정지· 징계 요구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 표명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1인 릴레이 시위를 벌인 것도 초선 의원들이었다. 또 '명불허전 보수다' '미래혁신포럼' 등 초선들이 주축이 된 연구모임엔 유승민 금태섭 전 의원, 오세훈 전 서울시장, 원희룡 제주지사,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등 연사가 줄을 잇는다.


계파·당 대표 힘 빠져… 20대와 다르다

국민의힘 초선들의 목소리가 커진 건 야권의 권력 구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같은 막강한 차기 대선주자가 없고, 김종인 비상대책위 체제가 내년 4월까지 시한부로 유지되기 때문에 '눈치'를 봐야 하는 '보스'가 사라졌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실시된 21대 총선 공천에선 '계파'의 입김도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또 차기 총선이 3년 넘게 남아 의원들이 당장 공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국민의힘 현역 의원 103명 중 58명이 초선으로, '초선이 최대 계파'라는 말도 나온다. 국민의힘 3선 의원은 "주호영 원내대표가 최근 '태극기 세력'이 합류한 회의체에 참석한 것을 두고 초선 그룹에서 강하게 항의하기도 했다"며 "초선 의견을 최대한 경청하자는 게 현재 당 분위기"라고 전했다.



활발한 소통·자발적 참여가 원동력

국민의힘 초선 투쟁의 특징은 '리더'없이 활발한 소통으로 자발적 참여를 꾀한다는 점이다. 의원 58명이 카카오톡 대화방에 모여 수평적 의사 결정으로 행동 방향을 의논한다. 가령 청와대 앞 1인 릴레이 시위는 김은혜 의원이 아이디어를 냈고, 공감하는 의원들이 힘을 모아 밀고 나갔다. 초선인 황보승희 의원은 "초선 그룹은 누구라도 합리적인 목소리를 내고 이에 공감하면 이렇게도, 저렇게도 무리가 형성될 수 있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초선인 배준영 의원은 "초선들은 지난 4월 총선 이후 5, 6개월간 일종의 '수습'기간을 보냈고, 이제 제대로 된 활동을 시작하는 것"이라며 "필리버스터 정국이 끝나도 집단 지성을 발휘해 지혜를 짜내겠다"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박진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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