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딜 브렉시트' 초침 째깍째깍... 얼굴 붉히는 英-EU

입력
2020.12.13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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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EU 제안은 받아들일 수 없는 수준" 
'노딜' 현실로... 유통업체 사재기 나서

기나긴 ‘이혼 협상’이 결국 파국 목전에 놓였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Brexitㆍ브렉시트)에 따른 ‘미래관계협정’이 13일(현지시간) 협상 종결 시한까지 접점을 찾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 탓이다. 2016년 영국이 국민투표로 브렉시트를 결정한 후 4년 반 동안의 지난한 여정이 자칫 물거품으로 마무리될 위기를 맞았다.

영국 스카이뉴스는 전날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영국과 EU의) 대화는 계속되고 있지만 EU 측 제안은 여전히 수용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양측이 평행선을 달리는 쟁점은 △어업 △공정경쟁환경 △분쟁해결 거버넌스(통제체제) 등 크게 세 가지다. EU는 영국이 자체 품질 기준과 기업보조 정책 등을 구비한 채 EU 단일시장에 관세 없이 접근하면서 혜택을 보는 것은 막겠다는 입장이다. EU는 또 소속 어선이 영국 수역에서 자유롭게 활동하지 못하면 영국의 수산물 수출 역시 불허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영국 정부는 자국 영해에서 일어나는 일과 어업 규칙결정권은 주권국으로서 영국이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양측간 무역 분쟁을 유럽사법재판소에서 다뤄야 하느냐를 놓고도 이견이 팽팽하다.

영국에서는 이미 ‘노딜’ 브렉시트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영국 여론조사기관 브리튼싱크가 13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영국 유권자의 66%는 합의 없는 탈퇴를 예상했다. 실제 영국은 합의 실패를 상정한 ‘비상 물자’ 비축에 돌입했다. 영국-프랑스 해저 터널이 연결된 프랑스 칼레에서는 11일 한때 영국으로 이동하기 위해 대기 중인 물류 차량 행렬이 17㎞에 달했다고 한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의 일요판 선데이타임스도 13일 “슈퍼마켓들이 일주일 전 정부로부터 노딜에 대비하라는 언질을 받고 주말 식료품 등 재고 확보에 들어갔다”며 “보건부는 의약품과 백신 등을 공급하는 업체에 6주 분량 재고를 안전한 곳에 비축해두라고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영국 국방부도 어업 분쟁 합의 불발에 대비해 군함을 동원, EU 소속 어선들의 영국 해역 진입을 막을 예정이라고 12일 밝혔다. 한때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와 EU라는 울타리 아래 한솥밥을 먹었던 양측이 무력을 동원하는 볼썽사나운 모습까지 연출한 셈이다. 영국 16개 정부 부처 당국자들은 16일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한 도상 훈련까지 실시할 계획을 세워놨다.

정상들의 입씨름 수위도 한층 높아졌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EU와 협상하는 대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직접 대화하겠다고 요청했다가 거부당했다. 11일엔 “노딜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도 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역시 이날 취재진에게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면서 13일 시한까지 결과물 없이 협상이 종료될 가능성을 시사했다.

애꿎은 정치 싸움에 볼모가 된 것은 시민들이다. 노딜 브렉시트가 현실화할 경우 당장 내년 1월 1일부터 양측은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따라 교역해야 한다. 그간 누려온 ‘관세동맹’의 혜택이 없어진다는 뜻이다. 또 합의 여부에 관계 없이 내년부터 영국에서 일하는 EU 소속 국민들의 노동허가 조건에 변화가 생긴다. 올해까지 EU 역내에 거주하지 않는 영국인들 역시 향후 EU 소속국에서 거주하거나 노동할 권리가 사라지게 된다. 건강보험과 고등교육 교류 프로그램 지속, 사소하게는 국제운전면허증 인정 여부까지도 결정된 것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물론 아직 노딜 브렉시트를 점치기는 섣부르다는 지적도 있다. BBC방송은 “시한이 지나도 협상이 계속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내다봤다.

김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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