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방배동에서 발달장애인 아들과 살다가 숨진 지 5개월만에 발견된 김모(60)씨. 김씨가 아무런 돌봄을 받지 못하다가 사망하기까지 여러 차례 '비극의 전조'가 나타났지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선 이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했다. 건강보험료, 전기요금, 수도요금 등이 잇달아 체납되는 상황인데도, 정부의 모니터링 대상에 들지 못했던 것이다.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 지난해 관악구 탈북 모자 사건 등 '복지 사각지대'에서 비슷한 비극이 반복되고 있음에도 위기 가정을 발굴하는 시스템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한국일보가 서초구청, 방배동 주민센터, 국민건강보험공단 등을 통해 사망한 김씨 가구의 가계 상황을 파악한 결과, 생활 필수재와 관련한 미납과 독촉이 여러 차례 발생했고 실제 전기와 통신이 끊기는 상황에 몰렸던 것으로 확인됐다.
김씨는 2018년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된 이후 여러 기관으로부터 건강보험료나 공과금 납부를 독촉받았다. 2008년 11월부터 올해 9월까지 100개월치 건보료 523만원을 납부하지 못했고, 최근 건보공단으로부터 예금통장, 임금, 부동산 등에 대한 압류를 진행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사망(올해 7월 추정) 전에는 건강 악화로 공과금마저 감당할 수 없어, 전기요금은 올해 3월, 가스요금은 4월부터 미납 상태였다. 김씨와 발달장애인 아들 최모(36)씨가 쓰던 휴대폰 역시 요금 미납으로 각각 7월, 9월에 정지됐다.
상황이 이런데도 김씨 가구는 정부의 '복지 사각지대 발굴'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 보건복지부는 건보료 체납과 단전·단수 등 30여개 정보를 토대로 각 지자체에 취약가구 목록을 통보하는데, 김씨는 2018년부터 이미 기초수급자로 지원받고 있다는 이유로 대상에서 제외됐다. 서초구청 관계자는 "올해 6차례 위기가구를 통보 받았지만 김씨 가구는 제외돼 있었다"며 "건보료 체납 내역도 통보된 적 없고, 본인의 상담요청도 없어 주민센터에서 자세한 사정을 확인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초생활수급자인 김씨가 2018년 10월부터 매달 지원받은 돈은 24만~28만원 가량의 주거급여에 불과했다. 생계·의료급여 신청은 오래 전 이혼해 연락을 끊은 전 남편 등(부양의무자)의 동의가 필요해 가능하지 않았다. 지난해 2월 김씨는 수도요금을 내기 힘들다며 직접 주민센터에 상담을 요청해 이웃돕기 성금으로 도움을 받았지만, 한 번 뿐이었다.
정부의 '레이더(요금 납부를 통한 사전 감지)'가 작동하지 않았어도 지자체 등의 현장 방문이 제대로 이뤄졌다면 비극을 막을 수 있었겠지만 이마저도 미흡했다. 서초구청에 따르면 주민 주거지를 직접 찾아 지원하는 '찾아가는동주민센터' 매뉴얼에, 김씨와 발달장애인 아들 최모(36)씨는 '근로능력이 있는 2인 일반가구'로 분류돼 연 1회 모니터링만 받았다. 주민센터의 마지막 방문은 올해 3월이었는데, 방역물품을 전달할 목적이었을 뿐 구체적인 가구 사정은 확인하지 않았다.
어머니 시신을 수개월 간 곁에 두다 노숙을 택한 아들 최씨가 동네 밖에서 우연히 사회복지사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김씨의 사망 사실은 더욱 오랫동안 알려지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달 서울 동작구 이수역에서 노숙 중인 최씨를 발견해 구조한 복지사 A(53)씨는 "기관 소속은 아니지만 개인 자격으로 노숙인을 지원했기 때문에 최씨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다"며 "숨진 김씨는 물론 최씨를 도울 수 있는 제도가 많았는데, 정부와 지자체에서 제대로 안내를 해줬는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치밀하지 못한 복지시스템이 근본적으로 재구성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최지선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 교수는 "사회 취약계층이 워낙 여러 형태로 존재하는 만큼 필요한 자원의 성격도 다양하고 필요한 투입 시기도 다르다"며 "기초수급자 또는 수급자가 되지 못한 위기가구 등을 각각 관리할 수 있는 대응망이 좀더 촘촘해져야 한다"고 진단했다.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지원 제도를 현실화할 수 있는 전문 인력 개발도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