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성폭행범 조두순(68)이 12일 오전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가운데, 이 사건 피해자의 심리 치료를 담당했던 신의진 연세대 소아정신과 교수는 정부의 피해자 보호 대책이 12년간 변한 게 없다며 "낙제도 이런 낙제가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신 교수는 이날 오후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출소한 조두순 사진을 보니 12년 전에 비해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한 거 외에는 달라진 게 없다"면서 "당시 사건이 떠오를 만큼 참담하고, 착잡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는 조씨 거주지 주변에 폐쇄회로(CC)TV를 증설하고, 순찰 병력을 배치하는 등 '물리적 억지력'으로 방범을 강화했지만, 실제로 중요한 건 조씨의 '심리적 억지력'"이라며 "조씨가 음주를 하지 않고, 이성을 잃지 않도록 치료와 스트레스 조절이 필요한데 정부가 내놓은 치료 방법을 보면 전혀 전문적이지 않다"며 재범 가능성을 우려했다.
실제로 정부가 피해당사자 보호를 위해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한 사이, 신 교수가 회장으로 있는 한국성폭력학대예방협회의 모금 활동 덕에 피해 가족은 지난달 말 경기 안산을 떠나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시민 5,300여명이 모금 운동에 동참했고, 그렇게 모인 3억여원이 피해 가족에 전달됐다.
신 교수는 "10월 말만 해도 피해자와 그 가족은 또 다시 조두순과 마주쳐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트라우마를 재경험했다"고 말했다. 이어 "12년 전 수술비도, 이번 이사 비용도 정부나 제도의 도움 없이 모두 시민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충당한 것"이라면서 "정부는 도대체 무슨 정책으로 피해자를 도와주고 가해자를 통제할 것인지 12년 동안 명확한 답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 교수는 이에 가해자에 대한 보복 대신, 성범죄 예방과 피해자 보호와 관련한 제도 개선에 대해 시민사회가 더 관심을 기울여줄 것을 당부했다. 신 교수는 "저라고 직접 가서 (조두순을) 때려주고 싶지 않겠느냐"면서 "하지만 '조두순을 죽여버리겠다, 응징하겠다'는 것은 야만적인 방법이다. 상대가 야만인이라고 야만적인 방법을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감정적 소모 대신 합리적으로 고민하고, 정부 정책을 비판하고 꼼꼼히 따지며 그 울분과 슬픔을 승화해야 한다"며 "피해자가 자신이 안전하고 보호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다지고, 또 그 마음들을 피해자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자"고 말했다.
실제로 조두순 사건의 피해자 나영이(가명)는 지난 1일 열린 이사 비용 기금 전달식에서 부모님을 통해 "많은 분들의 성원에 감사하다"는 내용이 담긴 짧은 편지를 전달했다고 한다. 신 교수는 "피해자의 편지에는 '이렇게 많은 도움을 받은 만큼, 저도 나중에 다른 범죄 피해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적혀 있었다"면서 "성범죄 피해자에게 지원이 없는 참담한 현실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