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으로 경제·정신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는 젊은 여성들이 늘고 있다. 이전부터 부모와의 불화, 학대, 빈곤 등으로 마음 붙일 곳 없던 '1020대' 여성들이 코로나19 이후 외출 자제 등으로 폭언과 폭력에 노출되기 쉬운 상황에 처하면서다. 심리적인 고립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거나 가출 후 생활고 해결을 위해 유흥업소에 발을 담그기도 한다. 이 같은 환경은 코로나19 이후 일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젊은 여성이 증가하는 배경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아침부터 엄마의 신경질이 끊이지 않아요. 소리 지르거나 물건을 내던지거나. 잠시라도 집을 떠나 거리를 두고 싶어도 코로나 때문에 재워줄 곳도 숨을 돌릴 곳도 없어요." (14살·A양)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많은 계정을 만들었어요. 친구와의 대화용 외에 불만을 쏟아내는 계정, 파파카쓰(남성과 식사 등을 같이 하고 돈을 받는 행위) 계정도 만들었죠. 너무 외로워서 누구와 만나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14살·B양)
1020대 젊은 여성들을 지원하는 비영리법인(NPO) 본드 프로젝트(이하 본드)에서 최근 상담한 내용들이다. 코로나19 이후 고민이나 스트레스를 해소할 곳이 마땅치 않은 여성들은 불안감에 수면제에 의지하거나 SNS에 빠져 지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2009년 설립된 본드는 도쿄 시부야에서 가출했거나 원치 않은 임신 등으로 고민하는 1020대 여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이들을 지원해 왔다. 매년 3차례 발행하는 무료잡지 '보이스(VOICE)'를 통해 가정과 사회에서 고립된 여성의 목소리를 담아 알리고 있다.
다치바나 준(橘ジュン) 본드 프로젝트 대표는 "코로나19로 인한 외출 자제와 휴업 등으로 갈 곳이 없거나 직장을 잃은 여성들의 고민이 늘고 있다"며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파파카쓰 등 원치 않은 일을 시작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파파카쓰는 아버지뻘 남성과 데이트를 하는 대가로 돈을 받는 행위로 때로 성적 관계를 요구 받는 경우도 있다.
지난 9일 본드가 운영하는 요코하마의 여성 쉼터를 방문했을 때는 오사카에서 상경한 사야카(19·가명)가 상담 중이었다.
“아빠가 돌아가신 뒤 생계를 책임진 엄마는 집에 돌아오지 않는 날이 많았어요. 학교를 마치고 집에 와도 말 한마디 건네는 이가 없어 외로웠어요. 주변의 관심조차 받지 못한 존재라는 생각에 ‘죽고 싶다’는 감정이 들었고 행동으로 옮긴 적도 있고요."
본드는 보호시설에서 사야카에게 심신의 안정부터 되찾게 해줄 예정이다. 건강과 자존감을 회복한 다음 자립을 고민하기로 했다. 그녀에게 '꿈이 있느냐'고 물으니 "언젠가는 저 같은 처지의 친구들을 돕고 싶어요"라고 수줍게 말했다.
출산 후 모자지원시설에 입소하게 된 마유(20·가명)는 “양부모 학대를 피해 14살 때 처음 가출을 했고 16살 때부터 유흥업소를 옮겨 다니다 지난해 남자친구와 아이가 생긴 걸 알았어요"라며 "임신 소식을 전하자 그가 연락을 끊어버리더군요”라고 했다.
혼자 애를 낳아 키우겠다고 결심했지만 어떤 준비부터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던 차에 라인을 통해 본드 프로젝트의 상담을 받았다. 본드 스태프들은 산부인과에 동행했고 거처가 없던 그녀가 출산 후 지낼 수 있는 지원시설을 주선해줬다.
지난 2일 NHK 시사프로그램인 ‘클로즈업 현대’는 코로나19로 경제적인 빈곤에 처한 젊은 여성들이 유흥업소에 내몰리는 현실을 비췄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다가 코로나19 이후 해고된 20대 여성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어 유흥업소에 발을 들였다. 어머니의 자살로 대학생활을 포기한 후 학자금 대출을 갚으려 낮에는 파친코, 밤에는 유흥업소에 근무하는 20대 여성, 코로나19로 실직한 남편의 폭언과 강요로 생활비를 벌기 위해 파파카쓰에 내몰린 30대 주부 등이 소개됐다. 코로나19 감염 우려에도 돈을 더 벌기 위해 상대의 무리한 성적 요구에 응하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가정 불화나 부모의 폭행·폭언에 시달려온 10대 여성들도 이러한 유혹에 빠지기 쉽다. 집에서 벗어났다고 해도 아르바이트로는 생활이 여의치 않을 경우 손쉽게 돈을 쥘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인터넷 등에는 '#파파카쓰모집’ 등의 해시태크로 여성들을 끌어들이거나 유흥업소 취업을 알선하는 일이 빈번하다.
본드와 같은 젊은 여성들을 지원하는 NPO들은 트위터나 온라인 상담게시판 등에 올라온 여성들의 고민을 꼼꼼히 살펴 먼저 상담이나 지원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본드는 이들을 '네트 패트롤'이라고 부른다. 게시판이나 SNS에 올라온 여성들의 고민을 보고 접근해 유혹의 손길을 뻗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본드에선 10여명의 여성 스태프들이 라인과 메일 등을 통해 상담에 응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매월 상담 건수는 1,500~2,000건이었지만 올해 코로나19 이후 하루 100건 수준으로 늘어났다. 글 만으로는 상황을 파악하기 어려우면 전화 상담이나 스태프가 직접 찾아간다. 사정에 따라 본드의 시설에서 보호하거나 병원, 경찰, 행정 지원단체 등을 연결해 준다.
다치바나 대표는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을 곳이 없는 1020대 여성들은 코로나 시대 가정과 사회의 가장 취약한 존재"라며 "이들이 처한 상황을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젊은 여성들 스스로 '도와달라'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