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출범 시점을 포함한 정치적 전환기에는 교육, 행정, 재벌, 재정 등 각종 개혁 구호가 넘쳐난다. 개혁 착수를 위한 위원회가 꾸려지고 다양한 개혁안(?)이 제안되곤 하는데 이번 정권에서는 유독 검찰 개혁 구호가 주목을 끌고 있다.
변화와 진화를 향한 끊임없는 노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문제는 개혁의 목표와 내용이 불분명한 상태에서 구호의 무게와 결과 간 괴리가 크고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국력 소진을 야기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현실의 어떠한 제도와 정책 결정을 막론하고 일정 수준의 문제점과 한계, 그리고 운영 과정에서의 부작용을 배제할 수 없다. 이로 인해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은 해당 분야의 개혁 구호에 일단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고 자연스럽게 선거나 정치적 힘겨루기 과정에 파고들어 갈 공간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현실의 제도를 개선하고 극복해야 할 필요성에 공감하더라도 이를 전체 시스템의 오류로 단정하여 기존 제도의 선순환 측면을 일방적으로 격하하는 개혁 시도는 본말이 전도될 소지가 크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만일 개혁 구호 내면에 정치적 동기나 특정 집단의 의도가 잠복되어 있다면 자칫 위선과 모순의 프레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개혁의 방향과 내용에 관해 다른 입장을 내놓으면 마치 반(反)개혁 수구로 비난하는 시도는 근절되어야 한다.
개혁에 착수하는 과정에서 제도의 존재가치를 큰 틀 속에서 이해하면서 문제점이나 부작용을 치유하는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창한 개혁구호를 통해 시스템에 대한 상징적 불신을 일방적으로 부추겨 기존 제도의 기본가치를 훼손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그러기에 제도의 기본가치와 시대정신의 흐름 속에서 문제를 파악하고 바로잡는 원숙함과 균형 감각이 뒷받침될 때 쇄신과 변화가 진전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야 한다. 특히 개혁의 목표와 쇄신하여야 할 내용이 분명히 정립되고 최소한도의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공감할 수 있는 '개혁의 내용물'이 구심점을 잃고 개혁의 막연한 당위성만 요란하고 결과는 용두사미가 될 여지가 높다.
초미의 국민적 관심사가 되고 있는 '검찰 개혁'이 OECD 모범국가로 평가되는 대한민국에서 개혁 의제의 최우선 순위를 차지해야 할 사안인지에 대해서는 좀 더 객관적인 공감대가 필요하다. 검찰조직이 공정하고 엄정하게 그리고 일관성 있는 법집행에 대한 국민적 신뢰에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면 대통령, 국회 등 선출직 공복이 치밀한 제도 보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만일 검찰 개혁의 주된 내용이 공직자수사처 신설에 있다면, 왜 공직자 수사를 보편적 검찰조직으로부터 분리하여 별도의 전담기구를 설치하는 것이 국민의 기본권 보장과 고위공직자의 책임성 확보에 직결될 수 있는 필수적 요소인지 의아해하는 국민이 많다. 혹시라도 그동안 검찰이 다루었던 수많은 사건의 일부가 관할권 분리 필요성의 근거가 되었다면 특정 사안의 일반화 오류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사실상 상당수의 국민들은 검찰조직이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기존 행정 각부(各部)에 대한 행정수반의 포괄적 통제의 틀에서 벗어나 정치권력과 명목적 임명권자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는 '준 독립적 시스템'으로 견고히 자리 잡아야 한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
검찰 개혁을 주도하는 정부·여당은 비록 관련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었지만 '정치적 목표'를 위한 수사기관 신설이라는 상당수 국민과 야권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신설기관의 운영 과정에서만이라도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겸허함'과 '진정성'을 발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