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만 흉내 낸 음료수' 정도로 여겨지던 무알코올 맥주가 전자상거래(e커머스) 시장에서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예상보다 높은 판매량으로 일시 품절 현상까지 속출하고 있어서다. 상대적으로 저도수 술을 선호하는 젊은 소비자들의 취향이 무알코올 주류까지 이어지고 있는 데다, 향뿐 아니라 풍미까지 맥주와 흡사하게 구현한 제조 공법이 더해져 무알코올 맥주 인기를 높이고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으로 홈술족이 늘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진 부분 역시 저칼로리의 '맥주답지만 취하지 않는' 무알코올 맥주 시장을 성장시킨 요인으로 해석된다.
오비맥주는 11일 최근 출시한 '카스 0.0'을 지난달 26일 쿠팡에서 판매하기 시작한 결과, 7일 만에 초도 물량 5,282박스가 완판됐다고 밝혔다. 일시 품절 사태 이후 추가 수량이 공급된 10일부터 정상 판매가 재개됐다. 한 박스가 24캔(가격 1만5,600원)으로 구성돼 있어 하루에 1만8,000캔 넘게 판매된 셈이다.
카스 0.0은 300mL 캔 제품으로 알콜 도수는 0.05% 미만이다. 주세법은 알코올 도수 1% 미만일 경우 무알코올 음료로 구분하기 때문에 카스 0.0은 법적으로 주류가 아니다. 주류 온라인 판매는 전통주만 허용되지만 카스 0.0이 문제없이 쿠팡에 입점할 수 있었던 이유다.
무알코올 맥주 시장의 포문을 연 건 하이트진로다. 2012년 '하이트제로0.00'을 출시해 꾸준히 시장의 문을 두드리면서 현재 점유율이 60%대로 추정된다. 뒤이어 출격한 롯데칠성음료의 '클라우드 클리어 제로'가 20%대로 하이트와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칭다오, 하이네켄 등 수입 브랜드들도 무알코올 맥주 상품을 운영 중이다.
국내 무알코올 맥주시장 성장률은 2015~17년 다소 주춤했지만 2018년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올해 시장 규모는 200억원으로 추정되는데, 하이트제로가 처음 출시됐던 2012년 13억원과 비교하면 8년 만에 15배나 늘었다. 업계에선 5년내 2,000억원 수준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내 소매 맥주시장 규모는 3조원이 넘는다. 업계 추정대로 2,000억원 수준까지 무알코올 시장이 커진다 해도 전체 시장 규모를 고려하면 무알코올 맥주는 사실 6% 안팎인 아주 작은 틈새시장이다.
하지만 국내외 주류 업체들은 성장성에 주목하고 있다. 맛과 청량감을 차별화한다면 건강과 몸매를 망치면서까지 술을 마시려 하지 않는 사람들을 신규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분석에서다. 온라인 판매로 소비자 접점을 더 쉽게 만들 수 있는 점도 긍정적이다.
주류 업체들이 무알코올 맥주 생산 기술에 공을 들이는 것 역시 술의 알코올이 아니라 맛과 분위기에 취하고 싶은 사람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맛과 풍미를 살려야 한다는 게 업계의 판단이다.
하이트제로0.00의 경우 100% 유럽산 아로마 호프를 써 부드러운 거품과 시원한 목 넘김을 강조한 제품이다. 카스0.0은 발효 과정 없이 맥아 진액에 향을 첨가하는 보통의 무알코올 맥주와 달리 일반 맥주와 같은 원료를 사용해 동일한 발효와 숙성 과정을 거친다. 마지막 여과 단계에서 분리공법으로 알코올만 빼내 도수를 0.05% 미만으로 맞춰 맥주 맛을 만들어 낸다.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만든 '칭다오 논알콜릭' 기존 라거 맥주보다 맥주 풍미를 좌우하는 몰트를 2배 이상 첨가해 맥주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진짜 맥주와 흡사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취하기 위한 목적보다는 맛과 분위기를 즐기는 수단으로 술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맥주 고유의 맛을 무알코올로 만들어 내고 2030세대 맞춤형 마케팅을 펼치는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유희문 오비맥주 마케팅 부사장은 "카스0.0은 무알코올 시장에서 맥주 풍미를 살린 짜릿하고 청량한 맛으로 인정받고 있다"며 "즐기고는 싶지만 올코올 음용이 부담스러운 상황에 대안이 될 수 있는 제품이라는 점을 알리는 등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이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