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쓰련다, 로비에" 호텔들 이유 있는 단장

입력
2020.12.11 10:20


"마케팅 예산 풀 곳이 없다"
화려한 로비로 '인스타 인증샷' 띄우기
홍보 효과에 브랜드 이미지 제고


"팔다리 다 잘렸잖아요. 지방은 몰라도 서울 호텔 마케팅은 로비에 올인이에요."

한 특급호텔 담당자의 푸념이다. 이른바 '연말 분위기'를 타야 하는데 코로나19 확산으로 제대로 된 마케팅 활동을 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나마 호텔 로비가 '인스타 인증샷 명당' 역할을 하고 있어 예년보다 더 신경을 써 투자하고 있다"는 부연도 이어졌다. 매출에 도움 되는 것도 아니지만 명품 호텔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라도 챙기려는 발버둥이라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10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최근 주요 프리미엄 호텔들은 투숙이나 식사를 하지 않더라도 연말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트리 장식 등을 활용해 로비 공간을 포토존으로 바꾸고 있다.

원래 12월은 연말 파티나 데이트 수요를 공략하는 게 업계 공식이다. 수능이 치러진 달 역시 대표적인 대목이지만 호텔업계 수험생 마케팅은 아예 실종 사태다. 작년만 하더라도 수험표를 지참한 고객에게 숙박, 뷔페, 레스토랑 등을 할인해 줬는데 올해는 조용하다. 자칫 "이 와중에 집객을 하냐"는 빈축을 살 수 있어 호텔 홍보 자체를 조심스러워 하는 분위기다.

로비에 힘을 주는 건 따로 대외적인 마케팅을 하지 않아도 인스타그램을 통한 자연스러운 홍보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시각적으로 눈길을 끌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공유되기를 유도하는 '인스타그래머블(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싶게 만든다는 뜻의 신조어)' 트렌드를 공략하는 것이다. 호텔 인증샷을 SNS에 올리는 이들이 많아 입소문이 퍼질 수 있고 각 호텔이 지향하는 이미지도 전달된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는 '힐링'을 주제로 잡았다. 로비 한가운데 4.7m 높이 대형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웠다. 하얀 곰인형을 크기에 따라 10만원, 100만원에 판매해 수익을 기부하는 자선행사도 진행 중이다.

JW 메리어트 호텔은 로즈골드 나뭇가지 트리와 생화 등으로 우아한 고급스러움을 강조하고 있고, 그랜드 하얏트 서울은 '골드'를 테마로 10m짜리 트리로 화려한 이미지를 내세웠다.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와 파크 하얏트는 유럽을 콘셉트로 잡았다. 크리스마스트리뿐 아니라 북극곰 인형, 기차, 선물가게 상점 등 다양한 장식들이 투입됐다. 노보텔 앰배서더는 7m 에펠 탑 조형물로 '파리의 크리스마스'를 구현했다.

신라호텔 관계자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집콕'에 지친 사람들이 연말 분위기를 내고는 싶고 멀리 떠날 수는 없으니 연말과 어울리는 장소에서 사진을 찍고 공유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며 "유명한 호텔 로비는 포토존에 줄이 길게 늘어설 정도"라고 귀띔했다.

각 호텔 1층에서 화려한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경쟁적으로 진열하는 것도 연말 홈파티 소비 심리를 자극하는 전략이다. 호텔 케이크는 보통 7만~12만원대로 고가이지만 판매량이 눈에 띄게 늘었다. 12월 1~8일 신라호텔, 신세계조선호텔, 인터컨티넨탈 크리스마스 케이크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20%, 18%, 50%씩 늘었다.

아예 호텔 서비스를 집까지 가져다주는 곳도 생겼다. 롯데호텔은 수프부터 스테이크, 디저트까지 호텔 레스토랑 풀코스 요리를 배달해 준다. 드라이브스루로 포장하는 것도 가능하다. 앞서 신세계조선은 호텔 중식 메뉴를 가정간편식(HMR)으로 제작해 이마트에서 팔기 시작했고, 밀레니엄 힐튼 서울도 레스토랑 코스를 포장 판매 중이다. 인터컨티넨탈 식음 포장 판매 매출은 지난해보다 2.5배가량 늘었다.

인터컨티넨탈 관계자는 "보통 식음 판매는 크리스마스 연휴에 집중되는데 올해는 이례적으로 12월 초인데도 판매량이 늘고 있다"며 "집에서 연말을 보내는 사람들이 홈파티 분위기를 위해 푸짐한 한상 테이블을 차릴 수 있는 호텔 음식, 케이크 등을 구매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호텔들이 숙박 외 상품 판매까지 나서고 있지만 코로나19로 인한 매출 타격은 심각한 상황이다. 이날 호텔신라는 임원 수를 20% 감축하기로 결정했다. 승진인사도 없고 공개적인 인사 발표도 하지 않기로 했다. 인원 감축은 자진 퇴임 형식이지만 비상경영 체제 돌입에 가깝다. 3분기 호텔신라는 198억원 영업손실로 적자전환했다.

맹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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