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여행 고수들이 추천하는 추억 여행지①
말리면 더 가고 싶은 게 인간의 간사함이다. 코로나19로 발목 잡힌 이때, 마음만이라도 머나먼 여정을 떠나 본다. 대만을 찍고 일본을 거쳐 태국의 바다로 간다. 상상에 무슨 죄가 있으랴. 언젠가 지금의 푸념을 추억할 날을 꿈꾼다. 여행의 고수들이 추천하는 다시 가고 싶은 해외 여행지, 아시아 편을 소개한다.
원래 생활여행자였다. 한국이 여름일 때는 제주도로, 그 외 계절엔 매년 4~5회 ‘여름나라’로 떠나곤 했다. 종일 계획 없이 돌아다니기도 하고, 한 곳에 나무늘보처럼 늘어져 멍하니 하루를 보냈다. 그러다가 하와이 빅아일랜드에서 야간 스노클링을 경험한 후 완벽하게 바뀌었다. 틈만 나면 바다 생각이다. 물속에서 헤엄치는 꿈을 자주 꾸고, 바다에 둥둥 떠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지금 가장 그리운 여행지는 태국의 시밀란 군도다. 푸켓의 북서쪽 9개 섬으로 이루어진 곳이다. 안다만해를 떠다니며 보트 위에서 먹고 자고 다이빙하는 ‘리브어보드(live-aboard)’ 다이빙 투어를 떠나고 싶다. 다이빙은 전지 훈련 못지않은 힘든 일정인데 그마저도 그립다. 수심 26m에 홀로 동동 떠 있는 노란 해마가 장난감처럼 보여 물속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한 적도 있다. 겨우 시도한 야간 다이빙 땐 플랑크톤 떼의 아름다움에 깜깜한 바닷속 공포를 깡그리 잊기도 했다. 노곤한 몸으로 덱에 누워 바라보는 푸르른 풍경을, 지금 상상 중이다. 아무리 보아도 새롭고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매 끼니 태국 요리가 나오기도 했지. 꿈속의 명장면이다.
회사 생활 때문에 장거리 여행은 못하고, 매년 3~4회 동아시아 위주로 꾸준히 다녔다. 내 여행의 주된 목적은 맛집 탐방이다. 맛집 위주로 동선을 잡고 그 주위에 관광지가 있으면 들르는 식이다. 최근 2~3년 사이 사진 촬영에 재미를 붙여 예쁜 이미지를 담을 수 있는 곳 위주로도 일정을 짜곤 한다. 그리고 그곳의 풍광을 카메라로 담아내는 데 시간을 들인다.
지금 당장 해외로 떠날 수 있다면 가장 가고 싶은 곳은 대만이다. 지난해 가오슝과 컨딩을 여행했는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만인들의 친절에 감동했다. 허울 좋은 친절과는 달랐다. 음식도 입맛에 맞는 예쁜 카페나 레스토랑도 많아 구글맵에 저장해 놓은 장소도 한가득하다. 특히 컨딩은 꼭 다시 가고 싶다. 해변에 즐비한 카페에서 바라본 노을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해 질 무렵 대지를 물들이는 그 붉은 기운에 반한 사람들이 일제히 바닷가로 나선다. 카페 주인도, 현지인도, 여행자도 마치 누가 지시를 내린 것처럼. 서로 다르고 모르는 사람이지만, 감동을 공유했던 그 기분을 다시 만끽하고 싶다.
해마다 3~5개월간 해외에서 생활한 게 10여년이다. 1년에 1~2회 개인적인 여행을 했다. 코로나19 전에는 기회가 될 때마다 집으로 삼은 곳에서 가까운 지역, 주로 동남아시아를 여행했다. 속칭 ‘살아보기’ 여행을 좋아한다. 시내보다 조금 외진 곳에 숙소를 마련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현지인과 만나는 우연을 즐긴다. 현지인인 척 잠시나마 다른 삶을 살아보는 식이다.
지난해 입국한 뒤 코로나19가 터졌고, 현재는 한국에서 가끔 모델 활동 중이다. 결혼 후 시어머니와 함께 ‘수제초콜릿 오름’을 운영하며 일상의 즐거움도 맛보고 있다. 지금 가장 그리운 여행지를 꼽는다면 태국 방콕이다. 해외 활동 당시 방콕 시내 타운인타운(Town in Town)에 숙소가 있었다. 간판 없이 ‘알아서 주문하는’ 쌀국수집을 자주 이용했다. 일주일에 꼭 한 번씩 그 집에 갔다. 처음 방문했을 때는 나도 주인도 당황했다. 면과 고명을 ‘서바이벌’ 태국어로 주문했더니 주인의 얼굴에서 긴장이 사라졌다. 국수의 이름은 아직도 모른다. 갈 때마다 주문하는 게 다르니, 그냥 '김지예식' 쌀국수랄까. 토핑과 면을 바꿔가며 열심히 후루룩후루룩 하는 식이었다. 늘 꿈꾸던 태국 북부에서 2주 혹은 한 달 살기를 시도하면서 이 식당을 다시 찾고 싶다. 식당은 여전할까, 주인은 나를 반겨줄까?
국내는 2개월에 한 번, 해외는 출장을 포함해 1년에 3~4회 정도 여행해왔다. 그러고 보니 매월 한 번씩 어디론가 떠난 셈이다. 개인적인 해외 여행지는 아시아권이 대다수였는데, 가장 자주 간 곳은 일본 규슈 지방이다.
여행에 빠질 수 없는 게 음식이라 여긴다. 여행 경비에서 먹는 것만큼은 후하게 쓰는 편이다. 저녁 식사는 꼭 그럴듯한 요리로 혀와 배의 욕망을 채운다. 스케줄은 짐짓 극단적이다. 하루는 ‘빡세게’ 돌아다니다가 다른 하루는 ‘잉여롭게’ 노는 식이니까.
지금 당장 해외여행을 할 수 있다면 우치노마키 온센 마을에 가고 싶다!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바람도 소박해졌다. 가깝고 항공료 착한 일본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절실하다(물론 상상만 한다). 아소시(구마모토현)의 이 작은 온천 마을에서 홀로 정적인 나날을 보냈다. 무소음의 료칸 침실, 공허한 다실, 자욱한 수증기 속 온천, 그리고 침묵이 흐르는 가이세키 식사 자리 등 정적의 풍경이 이어졌다. 그 가운데 영화 같은 추억도 방울방울이다. 어느 스테이크 덮밥집에서 오사카 출신 친구를 만나 즉흥으로 아소 신사와 아소산 다이칸보에 가게 됐다. 다이칸보 전망대에서 친구가 물었다. “한국말로 키레다(きれいだ)를 어떻게 말해요?” 이후 “예쁘다”를 연속으로 읊조리던 친구의 모습. 정적인 풍경 가운데 마주친 의외의 인연이 너무 대조적이라 일종의 쾌감이 느껴졌다고 할까. 다시 그 순간을 마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