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려 "'7년 전 간첩 조작' 국정원, 뺨 때리며 전기고문 위협"

입력
2020.12.09 20:10
국정원법 위반 수사관들 재판 증인 출석
피해 증언하다가 북받쳐 결국 울음 터트려
"너무 힘들어 극단적 선택 시도하려 생각"
"국정원 직원들 날 너무 때려 손바닥 새빨개져"

“내 방에 있던 달력을 가져갔어요. 그래서 내가 혼자서 달력을 만들었는데 그것마저 가져갔어요. 시간 가는 것도 몰랐어요. 끌려가서 조사받고 또 조사받고. 너무 힘들고 지쳐서 방을 쭉 훑어 봤는데 24시간 나를 지켜보는 카메라가 있었어요. 하아…”

국가정보원 수사관들의 협박과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하고 “오빠 유우성은 간첩”이라고 거짓 진술을 했던 북한 출신 화교 유가려씨가 자신의 피해사실을 말하기 위해 9일 증언대에 섰다. 그는 2013년엔 자신의 거짓 진술 때문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오빠 유우성씨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국정원 직원의 가혹 행위를 받고 거짓 진술을 했다"고 폭로했었다.

가려씨는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12단독 송승훈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국정원 직원 유모씨와 박모씨의 국정원법 위반 사건의 재판에 나와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유씨와 박씨는 2012년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북한이탈주민을 조사하는 국정원 산하 중앙합동신문센터(합신센터)에서 가려씨에게 폭언과 폭행을 해 거짓 자백을 받아낸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2013년 유우성씨의 재판에 나와 조사 과정에서 폭행이 없었다고 위증한 것으로도 파악됐다. 가려씨의 허위 진술은 유우성씨가 기소되는데 결정적 증거가 됐으나, 대법원은 2015년 유우성씨에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는 최종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 과정에서 가려씨의 자백이 허위이고, 국정원의 증거도 조작됐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날 재판부는 피고인들을 법정과 연결된 구치감에 들어가게 하고, 그 앞에 병풍 모양의 가림막을 설치했다. 피해자인 가려씨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 가려씨는 “솔직히 말해 법정에 오기 전에 약도 먹었는데 심장이 떨린다. 옛날 생각을 하면 피가 끓는다”며 피고인들과 자신을 분리해 달라고 호소했다. 재판부는 다만 피고인들의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해 구치감의 문을 열어 가려씨의 증언을 들을 수 있게 했다.

법정에서 가려씨는 한마디씩 겨우 내뱉으며 증언을 이어갔다. 중간중간 한숨을 내쉬며 감정을 추스리려 했지만, “폭행 당시의 상황을 증언해달라”는 검사의 질문엔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가려씨는 2012년 11월 5일 신분 조사를 할 때 가장 많이 맞았다고 했다. “여자 수사관은 내 머리채를 잡아다 벽에다 찧었고 하도 때려서 나중엔 손바닥이 새빨갛게 되고 아프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남자 수사관님은 낮술하면서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고 뺨도 수십 번 때렸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바닥에 주저 앉았는데 앉지 말라고 머리채를 잡아서 일으켜 세웠습니다.” 가려씨는 “여자 수사관이 합신센터 숙소동 앞에 나를 세워 놓고 ‘탈북민으로 가장해서 들어온 애 구경하세요’라고 소리치고, 전기고문을 하겠다고 위협했다”고도 말했다.

가려씨는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려고 했다는 대목에서 다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선 1분여간 고개를 숙이고 흐느꼈다. 그렇게 재판 내내 가려씨가 울먹이자, 재판부는 다독이며 다시 크게 말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다음 공판은 내년 3월 19일에 열린다.

윤주영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