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이 돌아왔다."
21대 국회 출범 이후 174석 더불어민주당의 입법 독주에 별다른 위상을 찾지 못하던 6석의 정의당이 정기국회 막바지 쟁점법안 처리 과정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특히 상임위 안건조정위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면서 제1야당인 국민의힘보다 민주당을 더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8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안건조정위원회는 배진교 정의당 의원 반대로 인해 약 6시간 지연됐다. 야당 몫 조정위원으로 임명된 배 의원이 사회적참사진상규명특별법(사참법) 개정안에 보완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는 구체적으로 사참위에 특별사법경찰과 강제 조사권을 부여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배 의원 요구에 민주당 의원들은 회의를 멈춘 뒤, 국회에서 농성 중인 세월호 유가족을 찾아 수정안을 논의했다. 결국 배 의원 요구대로 ‘압수수색 영장 청구 의뢰’, ‘자료제출 요청권’ 등이 보완된 법안이 통과됐다. 정무위 민주당 간사인 김병욱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정의당이 이렇게 반대할 줄은 몰랐다. 배 의원을 설득하느라 회의가 오래 걸렸다”고 했다. 이어진 공정거래법과 금융그룹통합감독법 개정안 처리를 두고도 배 의원은 쉽게 찬성하지 않았고, 정무위 전체회의는 밤 11시에서야 열렸다.
우여곡절 끝에 정무위를 통과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두고도 정의당은 민주당의 행태에 분노를 쏟아냈다. 당초 안건조정위에서 배 의원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폐지'를 담은 정부안에 찬성표를 던졌는데 민주당이 전체회의에서 이를 뒤집고 '전속고발권 유지'가 담긴 안을 처리했기 때문이다. 배 의원은 "안건조정위 안건보다 후퇴했다. 표결에 참여할 수 없다"고 반발했으나 민주당은 이를 통과시켰다.
이를 두고 거대 여당이 소수 야당을 '기만했다'는 비판이 쇄도하자 9일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에게 머리를 숙였다. 강 원내대표는 “(김 원내대표가) 충분히 더 논의를 했어야 했는데, 적절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했다”는 유감의 뜻을 표시했다고 전했다.
20대 국회에서 범여권으로 분류되며 '민주당 2중대'라는 오명을 썼던 정의당의 모습과 상당히 다른 분위기다. 지난 9월 김종철 정의당 대표 취임 이후 민주당과 차별화하는 진보적 색채를 내겠다고 했지만, 현실적으로 존재감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차별금지법을 당론으로 하면서 민주당을 압박했지만, 거대여당은 이를 사실상 외면했다.
정의당도 이번 모멘텀을 살려 특히 민주당을 향해 존재감을 각인시키겠다는 구상이다. 당장 이날 본회의부터 국민의힘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 등 3개 법안에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걸었는데, 이를 민주당이 합법적으로 종결 시키기 위해서는 정의당이 필요하다. 재적의원 5분 3 이상(180석) 찬성이 종결 요건인데 현재 민주당은 구속된 정정순 의원을 제외하고 173석을 보유하고 있다. 범여권인 열린민주당 의원(3석)들과 민주당 출신 무소속인 김홍걸·양정숙·이상직 의원까지 합쳐도 179석에 불과해 상황에 따라 정의당 협조가 필요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김종철 대표는 이날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우리는 사참위법 같은 경우는 몰라도 다른 안건에 대해서는 필리버스터 종결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