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 490만 가구'가 다주택자의 셋집에 거주...다주택자도 주택시장 '필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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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2 04:30
12면

편집자주

※서민들에게 도시는 살기도(live), 사기도(buy) 어려운 곳이 되고 있습니다. 부동산은 치솟고 거주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집니다. 이런 불평등과 모순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요. 도시 전문가의 눈으로 도시를 둘러싼 여러 이슈를 하나씩 짚어보려 합니다. 주택과 부동산 정책, 도시계획을 전공한 김진유 경기대 교수가 <한국일보>에 3주에 한 번씩 연재합니다.

<13> 1가구 1주택의 함정, 다주택자 없애려다 세입자 잡는다

집이 하나면 충분하지, 두 세 채가 왜 필요한가. 이러한 시각에서 탄생한 것이 ‘1가구 1주택 주의’다. 복잡한 주택시장 구조를 고려하지 않고 직관적으로 생각하면 상당히 동의가 된다. 그리고 1주택 주의는 다주택자를 투자자 내지 투기자로 보고 강력한 가수요(假需要) 억제정책을 쓰는 데 찬성한다. 과연 이 논리가 합리적인 것일까. 우리가 1가구 1주택 주의를 강력하게 실행하면 어떠한 상황이 벌어질까.

다주택자 중에도 실수요자가 있다

우리나라 가구 중 주택을 소유한 가구는 2019년 기준 약 1,150만 가구다. 그 중 72%인 830만 가구는 1채만 갖고 있다. 2채 보유는 320만 가구 중 230만, 3채 이상 가구는 90만이다. 이들은 모두 투기수요자일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두 번째 집이나 세 번째 집의 성격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다주택자 중 투기꾼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전세보증금을 기반으로 수백 채를 갖고 있어 겉으로는 임대사업자 같지만 빈털터리 다주택 사기꾼이 있다. 비록 몇 채 안 되는 주택을 갖고 있더라도 쇼핑하듯이 연고도 없는 지역을 돌아다니며 필요도 없는 주택을 사고 팔면서 있지도 않은 개발호재를 빌미로 선량한 시민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투기꾼도 있다. 대절 버스를 타고 다니며 지방의 저렴한 주택을 싹쓸이해 애꿎은 지역주민의 내 집 마련의 꿈을 뺏는 파렴치한 사람도 있다. 이들은 주택시장을 교란하고 무고한 세입자를 곤경에 빠뜨리는 주택시장의 암적 존재다.

그러나 다주택자 중 상당수는 본인을 투자자나 투기자가 아니라고 항변한다. 이유는 정말 필요해서 두 채, 세 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두 채 보유 가구 중에는 갈아타는 임시 수요뿐 아니라 다양한 실수요가 포함돼 있다.

우선 1가구지만 맞벌이를 하는 가정을 생각해보자. 부인과 아이들은 서울에서 생활하고 남편은 세종에서 근무하는 경우, 남편이 반드시 셋집에 살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퇴직 때까지 장기적으로 거주할 가능성이 높다면 남편도 세종에서 조그만 아파트를 하나 사서 거주하는 대안을 선호할 수 있다. 셋집에 산다면 2년 내지 4년마다 새로운 집을 알아보거나 오른 전세금 마련을 위해 돈을 구하러 다녀야 한다. 서울에 집이 있지만 세종에 한 채가 더 필요한 실수요가 존재하는 것이다.

자녀를 위해 미리 장만하는 집도 장기적 관점에서 실수요로 볼 수 있다. 자녀가 결혼을 할 때 부모로서 가장 큰 걱정은 집이다. 결혼시기가 늦어지는 요즘 대체로 부모가 60세를 넘기기 일쑤다. 그래서 통상 50대가 되면 소득이 있고 대출도 가능할 때 자녀의 분가를 위해 한 채 미리 사 놓는 경우도 있다.

1주택 주의에서는 이들도 다주택자이니 필요 없는 주택을 시장에 내놔야 한다. 그런데 정작 아이들이 결혼할 때는 집값이 더 오르고 대출도 불가능하면 미리 사놓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최근 다주택자가 자녀에게 증여하는 건수가 폭증한 것은 이러한 상황을 반증한다. 어차피 물려주려고 사 놓은 것이니, 이 참에 증여를 택한 것이다. 그 바람에 그 주택에 살던 세입자는 다른 집을 알아봐야 할 처지에 놓였다.

노후 생활비를 위해 다주택자가 된 경우도 많다. 특히 소형주택의 경우 단기 거주자들이 임대로 살기를 원하므로, 이러한 주택을 사서 거기에 실거주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때문에 이런 주택은 누군가가 임대수익을 목적으로 보유하는 것이 극히 정상적이다. 그러니 본인이 살고 있는 주택에 더해 이러한 소형 임대주택을 한 채 더 갖고 있다고 해서 다주택자로 분류하고 세금을 중과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다. 그렇게 하면 결국 전월세 사는 세입자의 임대료도 같이 올라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1가구 1주택은 불가능하다

세계 어느 국가든 자가율이 100%인 나라는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집을 굳이 살 필요를 못 느끼는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진학을 위해 다른 도시로 이주했다고 하자. 학기 중에 혼자 머물다가 방학이 되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텐데, 굳이 취득세 재산세 내면서 집을 소유할 이유가 없다. 원룸이나 전셋집이면 충분하다. 일을 위해 타지에 잠시 머무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또 적당한 크기의 집을 사기에는 돈이 모자라서 전세나 월세로 거주하는 것이 더 유리한 경우도 있다. 아이가 둘인데 자기가 가진 돈으로는 방 2칸짜리밖에 살 수 없다면, 그보다는 방 3칸짜리 전세집을 구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일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현재 전국의 무주택 가구 890만 가구 중 약 300만 가구가 공공임대에 거주한다. 나머지 590만 가구는 개인이나 법인이 소유한 주택에 살고 있다. 자기집을 세주고 본인도 셋집에 사는 100만 가구를 제외하면 약 490만 가구는 다주택자가 제공하는 셋집에 살고 있다. 다주택자를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정책을 쓴다는 것은 곧 민간임대주택을 없애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세계 어디에도 민간임대주택이 없는 나라는 없다.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사회주택비중(32%ㆍ2020년 기준)을 가진 네덜란드도 8%의 가구가 민간임대에 살고 있다. 북유럽으로 포함한 대부분의 선진국은 20% 내외의 국민이 민간셋집에 거주한다.

1가구 1주택 주의는 환상일 뿐이다. 국민 모두가 대동단결해 1주택만 고집한다면 임대주택 재고는 급격히 감소할 것이다. 몇 개월 거주할 것이라서 집을 사고 싶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소유자가 돼 취득세 재산세를 내야 한다. 또 이사 가려면 집을 팔아야 하니까 거주 이전에도 많은 제약이 따른다. 공공임대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해 정부는 전에 없이 많은 예산을 여기에 쏟아 부어야 할 것이다. 설령 예산이 허락한다고 하더라도 몇 안 되는 공공사업자가 급변하는 시장 상황에 맞춰 수백만 가구의 다양한 수요를 고려해 적기에 공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거의 신의 영역이다.


다주택자와 현명한 동행을

집을 공짜로 주지 않는 이상 다주택자의 존재는 필요 불가결하다. 새 주택이 공급되면 누군가는 사줘야 원활하게 시장이 작동하고, 수분양자 중에는 다주택자가 있어야 입주 시점에 셋집이 공급된다. 신규주택을 모두 무주택자에게만 판다면 세입자는 신축 주택에 들어갈 기회가 없어질 것이다. 재고주택시장에서도 반드시 무주택자에게만 주택을 판매해야 한다면 거래경직이 일어날 것이다.

세제나 법을 통해 다주택자의 수요를 아무리 억누른다 해도 주택가격을 장기적으로 안정시키는 것은 한계가 있다. 특히 서울처럼 양질의 주택이 절대 부족한 곳에서는 더욱 그렇다. 다주택자의 수요는 일종의 파생수요인데, 근원수요인 전월세 수요에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전월세 수요가 충분하다면 다주택자에게 가해지는 불이익은 대부분 세입자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고 전월세가를 올리는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임대료의 인상은 더 많은 세입자들이 자가 마련에 뛰어들게 만드니 저렴한 주택 중심으로 매매가를 상승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결국 다주택자를 단지 투기 수요자로만 보는 시각은 위험하다. 주택시장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다주택자를,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임대공급자로 보고 어떻게 바람직한 파트너십을 형성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도시의 삶은 복잡다기하고 변화가 빨라 점유형태도 변화무쌍하다. 전대(Sublease)나 공동소유를 기반으로 한 코하우징, 코리빙과 같은 공유주거가 확산되고 있고, 주택을 사서 오피스로 쓰거나 사무실을 주거용으로 전환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더 나아가 거주와 업무, 교육, 의료 등이 주택에서 함께 이뤄지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지금 1가구 1주택 주의에 매몰돼 도시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것은 지속가능성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다주택자와 세입자가 상생하며 동행할 수 있는 해법을 찾아야 할 때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ㆍ교통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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