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으로부터 난데없는 된서리를 맞았다. 국제회의 공개 석상에서 북한의 방역 상황을 언급했다가, 북한의 2인자 김여정의 '표적 담화'를 받게 된 것이다.
외교부는 9일 김 제1부부장의 담화와 관련, "(강 장관의 발언은) 남북 간 방역협력 필요성을 언급한 것"이라는 짧은 입장만 냈다. 북한을 자극할 의도가 없었으며, 해당 발언의 방점은 남북 간 방역 협력 필요성에 찍혀 있었다는 뜻이다.
이날 김 제1부부장은 담화를 통해 "남조선 외교부 장관 강경화가 중동 행각 중에 우리의 비상방역 조치들에 대해 주제넘은 평을 하며 내뱉은 말들을 보도를 통해 구체적으로 들었다"면서 "앞뒤 계산도 없이 망언을 쏟는 것을 보면 얼어붙은 북남관계에 더더욱 스산한 냉기를 불어오고 싶어 몸살을 앓는 모양"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정확히 들었으니 우리는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고 아마도 정확히 계산돼야 할 것"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외교가에서는 강 장관 발언 내용을 보면, 북한이 이렇게까지 예민한 반응을 보일 이유까지 있었느냐는 평가가 대체적이다. 앞서 5일(현지시간)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주최로 바레인에서 열린 마나마 대화에 참석한 강 장관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한 질문을 받고 "북한이 우리의 코로나19 대응 지원 제안에 반응하지 않고 있다"며 "이 도전(코로나19)은 북한을 더욱 북한답게 만들었다고 본다(This challenge has made North Korea more North Korea)"고 답변했다. 또 코로나19 확진자가 없다면서도 방역에 국가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는 모습을 언급하면서 "좀 이상한 상황(a bit of an odd situation)"이라고 했다. 이어 "우리는 (북한에) 방역 관련 도움을 줄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하면서 답변을 마무리했다. 맥락상 북한 내 코로나19 상황을 비판했다기보단, 방역에 집중하고 있는 북한과의 협력 의지를 강조한 답변으로 보인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북한은 대외 전략에 따라 다소 의도적으로 김여정의 담화를 낸 것으로 보인다"면서 "강 장관 발언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발언 적절성 여부를 떠나 외교부로선 곤혹스런 상황에 놓인 모양새다. 이번 김 제1부부장 담화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대신 대외 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대리인의 공개 비난으로 볼 수 있다. 강 장관으로서도 향후 대북 발언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어진 셈이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정은 위원장이 이미 10월 열병식 연설에서 확진자가 없다고 공언했는데, 남측 당국자가 이를 부정한 꼴"이라면서 "북한 나름대로 (강 장관 발언을) 지적은 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내부 판단이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