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으로 정부가 8일 0시부터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2.5단계로 격상했지만, 정작 일부 정부 부처는 대규모 전시회 행사를 예정대로 강행해 눈총을 사고 있다. 민간 업체들이 억대 손실을 감수하며 전시회를 잇따라 취소한 것과 대조적이다.
9일 산업통산자원부 등에 따르면 이날부터 12일까지 나흘간 서울 삼성동 코엑스 C홀에서는 ‘제51회 한국전자전 2020’이 열린다. 한국전자전은 산업부가 주최하고 산업부 산하 특수법인인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KEA)가 주관하는 가전·정보기술(IT) 박람회다.
삼성전자 등 대기업뿐 아니라 벤처업체 등 국내외 300여 업체가 참가한 이번 행사는 당초 지난 10월 열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영향으로 보류했다가 결국 이번에 개최를 강행했다. 이번 행사에는 박진규 산업부 차관도 참석할 예정이다.
또 코엑스 A홀에서는 10일부터 12일까지 사흘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하고 정보통신산업진흥원 등이 주관하는 ‘코리아 VR 페스티벌’이 열린다. 최신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이 행사에는 140여개사가 참가한다.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격상에 따라, 각종 모임·행사 규모는 50명 미만으로 제한됐다. 하지만 전시회는 ‘50명 집합금지’에서 예외여서 행사를 열 수는 있다. 정부 지침에 따르면 전시회, 박람회, 국제회의 등은 거리두기 2.5단계에서 시설면적 16㎡당 1명으로 인원을 제한하면 정상 운영될 수 있다.
주최 측은 전시장 내 설치 부스를 예정보다 줄이고, 같은 시간대 관람객 수도 정부 지침보다 억제하는 등 방역 지침을 철저하게 지키겠다고 밝혔다. 산업부 관계자는 “정부가 정한 사회적 거리두기 가이드라인보다 더 강화된 선에서 행사를 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 주최 대규모 행사 강행에 시선이 곱지 않다. 실내 체육시설, 학원까지 문닫아야 하는 상황에 정부가 대규모 행사를 꼭 열어야만 하냐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대규모 전시회를 준비했던 민간 업체들은 스스로 전시회를 취소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비판 강도는 더 높아지고 있다. 당초 10~13일 사이 코엑스 A홀에서는 ‘맘스홀릭 베이비페어’가 열릴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확산에 주최 측이 취소했다. 이 행사가 취소된 덕에, 당초 코엑스 D홀에서 열려던 코리아 VR 페스티벌 등이 A홀로 옮긴 것이다.
11~13일 서울 대치동 서울무역전시장(SETEC)에서 열 예정이던 고양이 전문 박람회(‘궁디팡팡 캣페스타’)도 취소했고,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지난 3~6일 예정돼 있던 ‘키즈 잉글리시 페어’ 역시 개최를 포기했다.
이들 민간 업체는 막대한 손실을 감수했다. 코엑스 A홀의 12월 대관료는 하루 2,782만원이다. 3~4일 행사는 설치 및 철거 기간까지 일주일을 계약해야 해 대관료가 약 2억원에 달한다. 최근 민간 업체들은 대부분 2단계에서 행사를 취소해 대관료의 50% 정도밖에 돌려받지 못했다.
정부 주최 전시회 참가 기업 사이에서도 불만이 나온다. 한 참가 업체 관계자는 “2.5단계에서 정부가 전시회를 강행하는 이유를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