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의 핵심 징계 사유였던 이른바 '판사 사찰 문건'에 대해 전국 각 법원의 대표법관들이 정식 논의를 했으나, 결국 공식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참석 법관 과반의 찬성을 얻지 못해 부결된 것이다. 법관들의 이런 결론이 10일 윤 총장에 대한 법무부 검사 징계위원회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아니지만,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무리한 징계 사유를 댔다’는 윤 총장 측 주장엔 힘이 실리게 될 전망이다.
7일 오전 10시 온라인 화상회의 방식으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 참석한 전국 일선 법원의 대표법관 120명은 안건 상정과 토론, 표결을 거쳐 이같이 결정했다. 이미 확정된 기존 안건 8개 외에, ‘판사 사찰 의혹 문건’의 추가 상정 여부를 묻는 절차에선 발의자(제주지역 대표 법관)를 포함, 총 10명 이상의 법관이 논의에 찬성해 정식 안건으로는 채택됐다. 현장에서 새 안건이 발의될 경우, 다른 법관 9명이 동의하면 추가 안건에 상정된다. 법관대표회의 관계자는 “검찰의 법관 정보 수집, 이를 계기로 진행되는 정치권의 논란이 법관의 독립과 재판 공정성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제안이 있었다”고 상정 이유를 설명했다.
안건 상정 후, 여러 의견이 나와 원안 외에 수정안 3, 4개에 대한 토론도 벌어졌다. 찬성 의견을 낸 법관들은 “법관 정보 수집 주체(수사정보정책관실)가 부적절하며, ‘물의야기 법관리스트’ 기재와 같이 공판 외의 다른 절차에서 수집된 비공개자료도 다뤘다는 점에서 법관의 신분상 독립을 침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반대 측은 “서울행정법원에서 관련 재판이 진행 중이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사안이어서, 해당 재판의 독립을 위해 전국법관대표회의 차원의 의견 표명은 신중해야 한다”고 맞섰다. 이에 더해 “전국법관대표회의 의결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의견도 상당했다.
치열한 찬반 토론 후 대표법관들은 원안 및 수정안에 투표에 나섰고, 그 결과 모든 안에 대해 참석 법관 과반의 찬성이 나오지 않아 ‘판사 사찰 문건’ 안건은 부결 처리됐다. 특히 원안에 대해선 반대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어떤 방향으로든 의결을 통해 공식 입장문을 낼 경우, 정치적 해석을 낳고 사법부까지 이번 논란에 휘말리게 된다는 우려가 컸던 탓으로 풀이된다. 법관대표회의 관계자는 “결론을 떠나서 ‘법관은 정치적 중립의무를 준수해야 하고, 오늘의 토론과 결론이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걸 경계해야 한다’는 공통된 문제의식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전국법관대표회의의 이 같은 결론은 당장 10일 윤 총장 징계 심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추 장관이 ‘판사 사찰’이라고 규정했던 검찰 보고서에 대해 당사자 격인 법관들이 ‘공식 문제제기를 하진 않겠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셈이기 때문이다. 징계위 개최를 앞두고 추 장관으로선 ‘외부의 우군’을 얻을 기회를 잃은 셈이 됐고, 반대로 윤 총장은 한결 부담을 덜게 됐다는 얘기다.
이밖에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이날 △법관 임용 절차 개선 △법관 평정 개선 등에 대해서도 논의했으나 이들 안건 역시 부결됐다. ‘민사단독 관할 확대 촉구’에 관한 의안은 심의 후 가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