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9일 정기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과 ‘경제 3법'(공정거래법ㆍ상법 개정안ㆍ금융그룹통합감독법 제정안)’ 등을 포함한 10개의 이른바 개혁 법안을 처리한다는 방침을 7일 확정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연내 처리’를 공언한 입법 과제 15개 가운데 10개 법안을 추린 결과다.
한국일보는 7일 민주당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당 지도부가 논의한 ‘미래 입법과제(15개) 심사 현황’ 문건을 입수했다. 이 대표가 지난달 개혁ㆍ공정ㆍ미래ㆍ정의 등 4개 분야별로 연내 처리를 당부한 법안 15개의 내용과 심사 현황을 정리한 문건이다. 회의에서 당 정책위원회가 ‘이번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고 보고한 법안은 10개다. 복수의 최고위원들은 “당 차원에서 ‘최우선 입법 리스트’가 사실상 정리됐다”고 전했다.
민주당은 공수처장 임명 시 야당의 '거부권'(비토권)을 무력화하는 쪽으로 공수처법을 개정할 방침이다. 현생 공수처법상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회는 추천위원 7명으로 구성되는데, 6명 이상이 동의해야 후보를 추천할 수 있다. 국민의힘 추천위원 2명이 반대하면 공수처 출범이 막히는 것이다. 이에 민주당은 야당이 기한(10일) 내 후보를 추천하지 않으면 한국법학교수회 회장과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을 추천위원으로 자동 임명하는 내용으로 법을 바꿀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또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하는 국정원법 개정안 △경찰 업무를 국가경찰과 자치경찰로 나누는 경찰청법 개정안 △상시 국회 체제를 도입하는 ‘일하는 국회법’(국회법 개정안)이 '개혁' 분야 입법 리스트에 올랐다.
'공정' 분야에선 야당과 재계에서 반대하는 재벌 개혁 법안인 ‘경제 3법’이 9일 본회의에 상정될 전망이다. 재벌 대기업의 지배주주인 총수일가의 전횡을 방지하고(상법 개정안),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강화하는(공정거래법 개정안) 내용이 골자다. 민주당 관계자는 “원래는 ‘경제 3법'은 기업 등 이해 관계자가 많아 야당과 합의 처리해야 한다’는 기류가 강했다”면서도 “국민의힘이 법안 심사에 참여할 의지가 없다고 판단해 단독 처리로 가닥을 잡았다”고 했다.
'민생' 분야에서는 택배기사 등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의 고용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고용보험법 개정안이 최우선 법안으로 꼽혔다. 보험 설계사, 학습지 교사 등 특고는 형식상 개인 사업자이지만, 실제 임금 근로자 성격을 갖고 있다. 전형적인 임금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놓였는데, 이들에게 사회안전망을 제공하겠다는 취지다.
'정의' 분야에서는 △5ㆍ18 민주화운동 관련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 △세월호 참사 진상조사위원회의 활동기한을 연장하는 사회적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등도 9일에 처리하기로 했다.
이른바 ‘박덕흠 방지법’으로 불리는 이해충돌방지법은 연내 처리가 보류됐다. 지난 9월 국민의힘 소속이었던 박덕흠 무소속 의원의 가족 기업이 피감기관으로부터 수천억원대의 일감을 수주한 사실이 드러나며 여야 모두 해당 법안의 처리를 약속했지만, 슬그머니 발을 뺀 것이다.
잇따르는 택배 기사 과로사를 막기 위한 민생 법안도 입법 리스트에서 대거 빠졌다. 택배 기사, 환경미화원 등 이른바 ‘필수 노동자’의 정의를 명확히 하고 이들을 정부가 재정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담은 필수노동자보호지원법 제정안은 추가 논의키로 했다. 택배사업을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바꾸는 내용의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제정안도 마찬가지다.
이밖에 민주당당 정책위는 △중대 재해가 일어난 기업과 경영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계엄군 성폭력 등 5ㆍ18 진상조사위원회의 진상규명 범위를 확대하는 특별법 △제주 4ㆍ3 사건 희생자 및 유족에 대한 보상 방안 등을 담은 특별법 등에 대해서도 “소관 상임위에서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를 두고 “지지층이 열광하는 권력기관 개혁 법안만 속도를 내고, 민생과 노동 분야의 주요 법안은 대부분 후순위로 밀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내년 4월 서울ㆍ부산시장 재보궐 선거, 2022년 대통령 선거 등 정치 일정을 고려할 때 이번 정기국회는 주요 법안을 처리할 사실상 마지막 기회다. 이에 민주당 원내관계자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필수노동자법 등은 '제정법'이라서 국회 공청회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정기국회내 처리가 어려운 점이 고려됐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