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박근혜 갈림길'

입력
2020.12.07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겠다는 계획을 두고 당의 균열이 심각하다. 예상치 못한 일은 아니나 “뜬금포 사과를 하겠다면 문재인 정권 탄생부터 사과해야 맞지 않나”(배현진 의원) “정당성도, 정통성도 확보 못 한 명백한 월권”(장제원 의원) 등 비판의 수위가 꽤나 높다. 주호영 원내대표도 지금은 사과할 시점이 아니라고 반대했다. 김 위원장은 “사과를 못 하게 하면 내가 왜 여기 있나”라며 비대위원장직까지 걸었다.

□이렇게까지 반발이 큰 데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이 속절없이 하락해 오차범위 내에서나마 국민의힘이 더불어민주당을 젖힌 사실도 작용한 듯하다. 여당의 실패를 기회 삼아 극우 지지층을 감싸 안고 갈 수도 있겠다고 생각할 법하다. 그렇게 본다면 섣부른 판단이다. 총선 직후와 비교해 민주당 지지가 조사기관에 따라 10~20%포인트가 빠진 것이 사실이나 이들은 국민의힘 지지로 옮겨가지 않았다. 늘어난 것은 무당층이다.

□여당에 실망했어도 야당을 지지할 생각은 없다는 이 심리는 ‘국민의힘이 달라진 게 없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국민의힘은 박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에 대해 제대로 반성한 적이 없다. 황교안 전 대표가 총선을 앞두고 야권 대통합을 추진하면서 유승민 전 의원과 ‘탄핵의 강을 건너자’는 조건에 합의했지만, 실제로는 탄핵의 강은 덮고 몸만 합쳤다. 야당의 총선 완패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극우의 우물에 갇혀 국민 다수의 정서와 동떨어진 게 문제다.

□이제 국민의힘 비대위 체제가 추구해 온 변화와 쇄신이 진짜인지, 성공할지를 가늠할 중대 고비를 맞았다. 숱하게 ‘태극기 세력과의 결별’을 주장하고 ‘약자와의 동행’을 부르짖었지만 국민의힘은 신뢰받지 못했다. 메시지가 당론과 입법으로 이어지지 않은 탓이다. 이번에도 김 위원장 혼자만의 사과로 끝난다면 합리적 보수 정당이란 쇄신은 허상일 것이다. 지금 여당 지지율이 낮아도 내년 선거 결과는 또 알 수 없다는 얘기다. 문 대통령의 야당 복은 끝나지 않았는지 모른다.

김희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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