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관 선생님이 시험지를 뭉텅이로 돌려 주시더니, 각자 이름 보고 찾아가라고 했어요."
3일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4교시 종료령(타종)이 2분 일찍 울린 사고로 피해를 봤다는 수험생들이 속출하고 있다. 있어서는 안 될 사고가 일어난 것도 모자라, 현장에서의 사고 수습에도 문제가 많았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수능 당일 서울 강서구의 D고등학교에서 시험을 치른 재수생 A(19)양은 7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감독관이 다른 학생들 시험지까지 넘겨 주면서 알아서 찾아가라고 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A양에 따르면 24명이 있던 당시 교실에서 종료령이 잘못 울린 것을 몰랐던 감독관은 일단 시험지를 거둬갔고, "종이 잘못 울렸으니 계속 시험을 치라"는 방송이 나오자 뒤늦게 시험지를 돌려줬다. 처음에는 한 명씩 이름을 불러 시험지를 되돌려 주려 했지만, 이름이 비슷한 수험생이 시험지를 잘못 받는 사례가 나오자 아예 수험생이 알아서 찾아가게끔 조치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답이 표기된 시험지의 재배부를 수험생에게 전적으로 맡겼다는 것이다. 이 시험장의 다른 교실에서는 아예 시험지를 거둬가지 않은 사례도 확인되는 등, 감독관마다 사후 조치도 달랐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식으로 시험지를 돌려주는 바람에 다른 사람 시험지를 보고 답을 알 수 있는 상황도 가능했다는 게 수험생들의 지적이다. A양은 "감독관이 부정행위를 저지를 수 있는 상황을 만든 것이나 다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재배부 과정에서 문제 삼을 수 있는 부분은 이것만이 아니다. 4교시의 경우 세 과목 시험을 보는데, 각 과목이 끝나면 종료령이 울리고 시험지를 반납해야 한다. 그런데 수험생마다 선택 과목과 응시 순서가 달라, 재교부 과정에서 다른 학생들의 시험지를 통해 곧이어 치를 제2 선택과목 문제나 답을 미리 봤을 개연성도 있다. 제1 선택과목 시험 시간에 제2 선택과목 시험지를 책상 위에 올려만 둬도 부정행위로 간주된다.
수능 시험 감독 경험이 많은 교사들은 당시 D고에서 일어난 시험지 재배부 과정에 문제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19년차 고등학교 교사 장모(48)씨는 "가장 나중에 시험지를 받은 학생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 시험지와 그곳에 적어놓은 답이 앞선 수험생들에게 유출된 것"이라며 "해당 시험장은 공정성을 잃었다"고 강조했다.
교육당국은 시험 관리에 잘못이 드러나는 경우 징계 조치 등을 할 수는 있어도, 해당 수험생들을 구제할 방법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당시 종료령 사고를 당한 학생들은 교육당국이 사과를 넘어, 피해 구제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피해 학생 및 학부모들이 모인 단체 대화방에서는 교육부를 상대로 한 행정소송과 손해배상 청구 소송 등을 논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