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과거 중앙정보부 별관이었던 곳입니다. 이 건물을 비롯해 남산 일대에 중정, 안기부(국가안전기획부) 건물만 27곳이 있었을 정도로, 살 떨리는 중정의 위세가 대단했지요."
4일 서울 중구 예장동 남산1호터널 위 서울시청 제1별관. 구불구불한 산길을 돌아야만 도착할 수 있는 이 곳은 과거 중정 5별관으로 불린 건물이다. 이 곳에서 한국일보와 만난 정근식(63)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은 유난히 감회에 젖은 듯 했다.
정 위원장은 고문실로 향하는 건물 외부의 계단참에서 어두운 지하 계단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그리고는 설명을 이어갔다. "특히 이 5별관 지하 2층의 거대한 고문 시설은 남영동 대공분실과 함께 가장 악명이 높았던 곳이에요. 수많은 분들이 고초를 당하셨고, 천상병 시인도 그 중 한 명입니다. 천 시인은 고문 이후에도 꺾이지 않는 자신의 신념을 시를 통해 표현했는데, 바로 그 작품이 1971년의 '그날은'이라는 시입니다."
과거사 연구에 매진한 지 올해로 35년째. 전남 무안군에서 처음으로 6·25 전쟁 민간인 학살 피해자를 만났던 '청년 교수'는 이제 자타공인 한국 현대사 전문가가 되어 과거사 정리라는 중책을 어깨에 짊어졌다. 그간 수많은 과거사 피해자와 유족들을 직접 만나 온 정 위원장은 "퇴직을 2년 앞두고 국민에 봉사할 수 있는 중한 자리를 맡게 돼 몸둘 바를 모르겠다"며 "어찌보면 이번이 과거에 고통 받은 피해자들을 위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분골쇄신할 것"이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과거사의 진실을 규명하고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풀어줄 과거사위가 10일부터 다시 활동을 재개한다. 2005년 출범했다가 5년간 활동하고 2010년 문을 닫은 지 10년 만이다. 한국일보 2기 과거사위를 이끌 정 위원장을 만나 2기 과거사위의 활동 방향 등을 짚어봤다.
정 위원장은 1기 과거사위 활동을 두고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하면서도, 2기 과거사위는 1기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1기 과거사위는 활동 기간의 제한으로 형제복지원 사건 등을 조사하지 못한 채 해산해야 했고, 2008년 보수 정권이 들어서며 후반기 활동이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다. 과거사위의 직권조사가 단 15건에 그친 점도 아쉬웠다. 여야가 올해 6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을 개정해 2기 과거사위가 탄생하게 됐다.
정 위원장은 "2005년 당시는 1차 민주주의 이행기라, 냉전·분단 시기의 트라우마가 남아있어 후환을 걱정한 피해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던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2기 과거사위는 피해자들 좀더 쉽게 다가설 수 있도록 운영할 방침이다. 사법 구제 과정에서 과거사위 보고서가 피해 입증을 위한 법률적 효력을 갖는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정 위원장은 "2기에서도 최고의 조사관들로 진용을 꾸리고, 적극적으로 정부 각부처와 해외 학술단체 등을 통해 다방면으로 증거 자료 확보에 나설 예정"이라며 "우리 민주주의가 성숙해진만큼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여성 등 소수자들도 거리낌 없이 과거사위의 문을 두드린다면 결국 침묵의 영역을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재인 대통령이 정 위원장을 과거사위를 이끌 적임자로 낙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청와대는 지난달 13일 "정 위원장은 30년 넘게 동아시아 사회사 및 통일 평화 분야를 연구해 온 학자"라며 발탁 사유를 설명했는데, 정 위원장이 그간 항일독립운동·한국전쟁·민주화운동 등 과거사 진상규명과 피해자 치유를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해온 점을 고려한 것이었다.
정 위원장은 "10년 전보다 과거사 문제에 대해 여야의 합의 수준이 높다"면서 "가까운 시일 내에 여야 대표들과 만나 과거사위 활동과 관련 협조도 구하고, 영남 지역 지자체장들을 만나 관심을 기울여달라고 부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과거사 진상 규명은 피해당사자 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이라며 "미래 세대가 창의적으로 우리 사회를 꿈꾸고 꿈을 실현하려 할 때 과거가 족쇄로 작용하지 않도록 기본적 토대를 만드는 것 또한 과거사위의 의의"라고 강조했다.
2기 위원회의 조사 범위는 △일제 강점기 또는 그 직전에 행한 항일운동 △한국전쟁 전후시기 민간인 집단 희생 사건 △인권침해 사건과 조작의혹 사건 △테러·인권유린·폭력·학살·의문사 사건 일체에 대한 진실규명이다. 별도의 진상조사 기구가 있는 5·18 민주화 운동, 세월호와 가습기 참사, 군 의문사 사건을 제외한 모든 사건이 조사 대상이다. 조사기간은 3년이며 1년 연장이 가능하다.
과거사위가 직면한 가장 대표적 사건으로는 형제복지원, 선감학원, 실미도 사건 등이 꼽힌다. 특히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은 1975~87년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장애인, 고아 등을 불법 감금해 강제노역, 학대 등을 자행한 대표적인 인권 유린사건이다.
정 위원장은 "지난 위원회에서는 형제복지원 사건이 문제가 됐는지도 모르고 지나간 측면이 있었다"면서 "과거사위는 법률에서 규정하는 사례를 중점적으로 다룰 예정이지만, 언론에서 이슈화된 사건 말고도 앞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과거사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찾아서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6·25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피해자 유해 발굴 문제도 2기 과거사위의 중점 과제 중 하나다. 정 위원장은 "1기 때 가장 미진했던 부분이 유해 발굴"이라며 "당시 조사 결과 매장지 160여곳을 확인했지만, 실제 발굴 작업에 들어간 것은 13곳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유해 상태를 봤을 때 4년이라는 위원회 활동 기간 이내에 완전히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라 법령에 따라 활동 이후에도 재단이나 유해발굴특별법 등을 통해 발굴을 이어가는 방향으로 논의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유해 발굴은 남북 교류협력 문제와도 연결돼 있다고 정 위원장은 지적했다. 정 위원장은 "우리나라 영토에 북한 인민군이나 중공군이, 북한 영토에 국군과 미군 연합군 군인들의 유해가 많이 묻혀 있다"면서 "대화를 통해 유해를 가족 품에 돌려드림으로써 국가를 넘어서 동아시아 전체에 평화를 진전시키는 게 제 작은 소망"이라고 말했다.
진상 규명을 위한 사전 준비 작업도 척척 진행 중이다. 정 위원장은 "지난 1기 때는 대구·경북 지역의 신고 건수가 다른 지역에 비해 적었다"면서 "지자체장 등과 적극적으로 만나 신고 독려를 부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과거사 진상 규명은 정권이나 지역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과거사위가 넘어야 할 산은 많다. "굳이 과거의 일을 다시 들춰내 국민 분열을 조장할 필요가 있느냐"는 일각의 비판도 과거사위가 넘어야 할 산이다. 정 위원장은 "갈등을 유발한다는 우려는 1기 때도 있었다"면서 "하지만 많은 분들이 진실이 규명되고, 법률적 절차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면서 진상 규명을 통해 화해와 치유로 나아가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10년이라는 기간 동안 피해 생존자 혹은 유족들이 사망함에 따라 진실 규명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정 위원장은 "2005년부터 알고 지냈던 유족들 대부분이 돌아가셨다"며 "현실적 제약이 있지만, 3기 과거사위는 없다는 각오로 적극적으로 조사에 나서 그들의 억울함이 반복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사위 조사를 계기로 피해자가 국가 등에 대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도, 공소시효가 지나 기각되거나 증거불충분으로 끝날 가능성도 여전히 존재한다. 정 위원장은 "시효 문제 관련해선 법률 전문가들과 법 개정 등 방안을 강구해볼 것"이라고 답했다.
정 위원장은 인터뷰 말미 경북 문경시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 사건의 생존자 고(故) 채의진씨의 이야기를 꺼냈다. 한국전쟁 직전인 1949년 12월 24일 문경시 산북면 석봉리 석달마을에서 공비 토벌을 위해 수색 정찰 중이던 국군 2개 소대 병력이 공산주의자에게 협조했다는 이유로 어린이와 여성을 포함한 주민 86명을 학살했다. 당시 13세인 채씨는 형의 시신 뒤에 숨어 살아남았다.
하지만 군은 북한군이 국군을 가장해 양민들을 학살했다고 발표했고, 유족들은 군인들이 마을에서 환영받지 못한 데 분노해 주민에게 총격을 가했고 이를 공비 소행으로 위장했다고 주장했지만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2007년 1기 과거사위 조사를 거쳐서야 진상이 규명됐는데, 채씨는 미국을 오가며 관련 비밀문서를 찾아 공개하는 등 이 문제를 직접 공론화했다.
정 위원장은 "채 선생이 돌아가시기 전 저에게 나무로 된 조각을 하나 선물했다"면서 "수십년간의 억울함과 울분을 나무를 파며 삭힌 것인데, 그 조각을 볼 때마다 고통의 흔적을 새기며 자기 자신과 화해하려고 했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고 회상했다. 이어 "타자와의 화해도 중요하지만, 자기 자신과의 화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피해자들이 국가 권력과의 화해를 넘어서 치유의 주체로 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