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이 청와대와 여권의 반대에도 밀어붙였던 '원전 수사'의 핵심 피의자들이 구속됐다. '수사로 정치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무릅쓰고 승부수를 띄웠던 윤 총장 입장에선 살아있는 권력 수사에 한층 탄력을 받게 됐다.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을 수사 중인 대전지검 형사5부(부장 이상현)는 4일 형법상 공용서류 등 무효(공용전자기록 등 손상) 및 주거침입(방실 침입), 감사원법 위반 등 혐의로 A(53)씨 등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 2명을 구속 수감했다.
대전지법 오세용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열린 산자부 공무원 3명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범행을 부인하고 있고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며 A씨 등 2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함께 심사를 받은 산자부 공무원 B씨의 영장은 기각됐다. 오 부장판사는 "B씨가 범죄사실을 대체로 인정하고 있고, 수사와 재판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다짐했다"며 기각 사유를 밝혔다.
A씨 등 3명은 감사원이 감사를 위해 자료제출을 요구하기 직전인 지난해 12월 월성 원전 관련 자료의 삭제를 지시하거나 이를 묵인ㆍ방조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2월 감사원 감사관 면담 일정이 잡히자, 전날 밤 정부세종청사 산자부 사무실에서 2시간가량 월성 원전 관련 자료 444건을 지우는데 관여한 것으로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났다. 검찰은 A씨 등의 이런 행위가 월성 원전의 경제성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도록 방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윤 총장은 업무 복귀 이튿날인 지난 2일 전격적으로 A씨 등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명백한 정치수사이자 검찰권 남용"이라며 윤 총장을 맹비난했지만, 윤 총장은 강공책을 택했다.
직무가 배제되는 막다른 상황까지 몰렸던 윤 총장 입장에선 이날 영장 발부로 역공을 취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수사의 정당성을 인정 받은 것은 물론, 검찰총장으로서 제대로 지휘권을 행사했다는 평가도 받게 됐기 때문이다.
증거인멸을 주도한 산자부 간부들이 구속되면서, 다음 수사 타깃은 자연스럽게 경제성 평가 조작을 주도한 것으로 지목된 백운규 당시 산자부 장관과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을 지낸 채희봉 한국가스공사 사장이 될 전망이다. 검찰의 수사초점이 청와대 쪽에 맞춰질 경우 현 정권과 검찰의 갈등은 최고조에 달할 전망이다.
일각에선 이달 10일 법무부 징계위원회 개최를 앞둔 상황에서 이날 영장심사 결과가 윤 총장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표면적으론 윤 총장의 징계 사유와 이번 수사는 관계 없지만, 검찰이 지난달 초 원전 수사와 관련해 강제수사에 나서자, 법무부의 윤 총장 감찰이 본격화했다는 점에서 연관성을 부인하기도 어렵다. 윤 총장은 이용구 신임 법무부 차관이 원전 수사 핵심 수사대상인 백운규 전 장관의 변호를 맡은 점을 문제 삼고 있다. 이용구 차관이 현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윤 총장의 징계 심의에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