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 사법 권리 침해가 새로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재판이 연기돼 혐의에 대한 구명 절차가 수개월간 연기되는가 하면 배심원과 증인을 구하는 일 역시 곤란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2일(현지시간)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방역 조치로 재판 절차가 대규모로 중단되며 미 전역에서 가장 업무가 많은 뉴욕시 법원조차 올 3월부터 현재까지 치러진 형사재판이 단 9건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한달에 한 건의 재판이 겨우 치러진 셈이다. 작년 같은 기간 800건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수치다. NYT는 "작년 맨하탄 형사법원에서만 매일 15건의 배심원 재판이 진행되곤 했다"며 "뉴욕시 법원에 계류 중인 형사사건은 지난 6월에만 3만9,200여건에 달한다"고 전했다.
현재 재판 진행 여부는 온전히 법원마다의 자체 판단에만 의존하고 있다. NYT는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의 경우 지방법원은 5월 이후 114건의 형사재판 판결을 완료했지만 길 건너편의 연방법원은 어떤 재판도 치르지 않았다"고 전했다. 현재 미 전역에서 자체적으로 배심원 재판을 중단한 지방 법원만 최소 24곳이다.
재판 연기 외에도 사법적 권리는 여러 방식으로 침해받고 있다. 가장 문제가 되는 점은 법원에 계류된 형사사건이 늘어날수록 사법적 구제 역시 늦어진다는 것이다. 피의자들은 경미한 범죄 혐의로도 재판을 기다리며 무기한 구치소에 수감돼 있다. BBC방송은 "판결이 미뤄지는 '좀비 사건'들이 늘고 사람들이 수개월째 '혐의' 상태로 머무르면서 생계는 물론 정신건강도 나빠지고 있다"고 전했다. NYT 역시 "재판이 신속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감옥은 혼잡해지고 증거는 닳고 증인의 기억은 흐려지기 마련"이라며 법정의 재판 재개를 촉구했다.
많은 이들이 좁은 공간에 모이는 배심원 제도 및 증인 소환도 제동이 걸렸다. 배심원석의 간격을 넓히고, 좌석 간 투명유리를 설치하고 있지만 방역 허점이 많아 중단됐다. 가령 배심원단이 소집되면 재판이 끝날 때까지 같은 장소에서 숙식을 함께 해야 하며 증인의 경우 법정내 마스크 착용이 불가하다. 피고인이 증인의 얼굴을 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점으로 뉴욕주는 지난달에만 법원에 출두한 이들 중 최소 36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로렌스 마크 뉴욕주행정법원 수석판사는 NYT에 "배심원이 없다면 형사사법시스템은 어떤 의미에서든 완전히 작동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이 와중에 올해 형사 기소 및 법적 분쟁은 더 늘었다. 미 인터넷 매체 복스(Vox)는 "올해 5월부터 미국 전역으로 들불처럼 번져 나간 인종차별 반대 시위로 폭행, 총기 사고, 살인 등이 크게 늘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로 인한 민사 갈등도 잦아졌다. 미국법률저널(NLJ)은 "경기가 침체되며 집주인과 세입자간 갈등은 최근 가장 빠르게 증가한 법적 분쟁"이라며 "법원이 운영을 멈춤에 따라 뉴저지주에서 미뤄진 주거권 관련 재판만 작년 대비 36,000%가 증가했다"고 밝혔다. 미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현재 월세가 밀린 920만가구 중 49%는 강제 퇴거 위험에 놓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