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코트 ‘얼리 엔트리’ 바람

입력
2020.12.03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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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얼리 엔트리 선수, 고졸 2명 포함 7명 최다
KBL 2군 리그 본격 투입, 고졸 이준희 최고득점
 “프로야구처럼 FA 노리려면 조기 프로 진출 유리”

“신인이지만 코트 안에선 형들에게 주눅들지 않고 자신있게 해야죠.”

원주DB 이준희 선수가 2일 프로 첫 데뷔전을 치른 뒤 스스로 다짐하듯 밝힌 소감이다. 이날 비록 2군 경기인 KBL D리그였지만 26분 46초를 뛰며 팀 최고 득점인 26점을 넣었다. 해설을 맡은 김도수 해설위원은 “큰 키에도 매우 빠르다. SK 김선형을 능가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대학교를 졸업하지 않고 프로에 바로 진출한 ‘얼리 엔트리’ 선수들이 기대를 모으고 있다. 구단들은 “당장 전력이 될 만한 선수는 없다”고 평가 절하하면서도 D리그 경기에 넣으며 올해 투입이 가능한지 점검에 들어갔다.

경기 이천 LG챔피언스파크에서 2일 열린 원주DB와 전주KCC전에서도 이준희를 비롯, 건국대 3년 이용우(DB), 한양대 3년 이근휘, 상명대 졸업반인 곽정훈(이상 KCC) 등이 팀에 합류한 지 일주일도 안됐는데도 주축선수로 뛰었다.

이준희는 192㎝ 장신 가드임에도 빠른 발을 앞세운 돌파에, 3점슛 2개 등 26득점, 6리바운드, 1어시스트, 1블록 등 눈에 띄는 실력을 선보였다. 그는 “프로구단에 지명됐다는 것에 감사하고, 1군 경기에 뛴다는 생각만으로도 설레고 기대가 된다”며 “신인이지만 기존에 있던 선수들과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이겠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이날 경기에서는 이준희뿐만 아니라 능숙한 볼 배급에, 원활한 슛을 선보인 이용우, 위기의 순간 해결사 역할을 한 곽정훈 등이 수준 높은 활약을 했다. 농구도 프로야구처럼 얼리 엔트리 시대가 본격화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지난달 23일 열린 국내 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도 얼리 엔트리는 돋보였다. KBL 역사 최초로 제물포고 3학년 재학생인 차민석이 1라운드 1순위로 삼성에 지명되는 등 얼리 엔트리 선수 최다인 7명이 선발됐다.

과거 주희정이 고려대를 중퇴하고 연습생 신분으로 입단(97년 원주 나래 블루버드)한 것과 다르게 허웅(연세대3년 재학중인 2014년 원주DB 입단) 정효근(한양대3년 2014년 인천전자랜드 입단) 송교창(삼일상고 졸업반 2015년 KCC입단) 양홍석(중앙대1년 2017년 부산 KT입단) 등은 입단과 동시에 주목 받았고, 팀내 주축선수를 넘어 국가대표로까지 성장했다. 구단에서 얼리 엔트리 선발을 주저하지 않게 된 이유다.

또 프로ㆍ대학간 벌어진 수준차이로, 대졸선수라고 해도 일정기간 적응이 필요해 조금이라도 어릴 때 체계적인 구단 육성 프로그램을 통해 성장하는 게 낫다고 보고 있다. 차민석을 선발한 이상민 삼성 감독은 “고교생이지만 자질은 충분하다고 봤다. 팀에 합류해 훈련하는 모습을 보며 보완할 부분을 체크할 것이다. 가능성이 있는 선수인 만큼 노력에 (성공 여부는) 달렸다”고 봤다.

선수 입장에서도 전성기 때 자유계약선수(FA) 기회를 노릴 수 있어 얼리 엔트리를 선호한다. 1호 고졸선수 송교창의 경우 만25세가 되는 내년이면 FA 자격을 모두 채우게 된다. 송재우 해설위원은 “프로야구에서는 거액의 계약을 할 수 있는 FA가 99년 도입되면서부터 유능한 고졸 출신 입단이 대거 이뤄졌다”며 “농구에서도 성공한 고졸 선수들이 많아질수록 대학진학보다는 프로진출이 실력을 가늠하는 척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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