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초석을 다진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전 프랑스 대통령이 향년 94세로 별세했다.
3일(현지시간) 프랑스 공영 AFP통신과 유럽1 방송 등 현지 언론은 지스카르 데스텡 전 대통령이 전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합병증으로 숨졌다고 전했다. 그는 올해 폐 질환으로 병원에 수 차례 입원해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재단'은 트위터에 "고인의 유언에 따라 장례식은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고 전했다.
1926년 프랑스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지스카르 데스탱은 엘리트 양성학교인 국립행정학교(ENA)와 에콜폴리테크니크를 마친 뒤 1956년 서른살에 하원 의원에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재무장관 등을 역임하다, 전임 조르주 퐁피두 대통령이 재직 중 갑자기 숨지며 치러진 1974년 대선에서 우파 후보로 나와 좌파의 프랑수아 미테랑을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당시 그의 나이는 48세였다.
1974년부터 1981년까지 프랑스를 이끈 지스카르 데스탱은 유럽경제공동체(EEC)를 강화해 유럽연합(EU)으로 가는 디딤돌을 놓았다. 유럽 통합의 열성적 지지자였던 그는 유럽 이사회 창설을 주도했고, 유럽 의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 창설에도 역할을 했다.
프랑스 내부에선 낙태 합법화와 이혼 자유화, 18세 투표 연령 인하 등 개혁 정책을 추진해 성과를 냈다. 고속철(TGV) 개통도 그의 재임 시기에 이뤄졌다.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이 그의 재임 때 총리를 지냈다.
임기 7년을 마친 지스카르 데스탱은 1981년 재선에 도전했지만, 다시 맞붙은 미테랑에 패해 단임에 그쳤다. 이후 미테랑은 연임에 성공하며 14년간 프랑스를 이끌었다.
미테랑이 1996년, 시라크가 2019년 타계하면서 지스카르 데스탱은 프랑스에 현존하는 최고령 전직 대통령이었다. 말년에는 독일 공영 WDR 방송 소속 기자를 성추행 혐의로 수사를 받는 등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