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나이키는 깨달았다. 아디다스가 아닌 닌텐도와 싸우고 있다는 걸.'
1990년대 중반 매출이 급성장하던 세계 1위 스포츠용품 업체 나이키는 1998년부터 성장세가 꺾이기 시작했다. 아디다스 같은 경쟁사가 급성장한 것도, 나이키의 점유율이 떨어진 것도 아니었다. 분석 끝에 나이키는 전혀 다른 시장에 고객을 빼앗기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원흉은 사람들을 집안에서 게임에 빠지게 만든 '닌텐도 열풍'이었다.
이후 나이키의 경쟁사는 계속 바뀐다. 닌텐도와의 경쟁을 위해, 신발 밑창에 온라인 센서(감지기)를 달아 친구들과의 운동량 경쟁심리를 자극하는 게임 요소를 접목했더니 얼마 안 가 애플이 등장했다. 애플이 아이폰으로 소프트웨어를 장악하자 나이키는 칼로리 소모량과 운동거리 등을 측정해 건강을 관리해 주는 스마트워치로 대응했다.
전문가들은 지난 20여년 간 나이키가 확보하려 한 것은 스포츠용품 시장의 점유율이 아니라 소비자의 '시간 점유율'이라고 본다. 디지털 바람으로 업종간 경계가 갈수록 희미해지면서, 시간 점유의 과제는 기업의 디지털 광고 영역까지 침투, 미디어커머스 전쟁터를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이에 나이키의 다음 경쟁자는 넥플릭스가 될 거라는 전망도 나올 정도다.
1일 업계에 따르면 백화점, 편의점, 패션기업 등 유통 업체는 미디어커머스 경쟁력 강화를 위해 '웰메이드 드라마' 제작에 눈을 돌리고 있다.
영상 콘텐츠로 마케팅 효과를 극대화하는 미디어커머스는 모바일 영상 소비에 친숙한 소비자층을 유인할 수단이다. 운동화만 팔아선 망할 수 있다는 나이키의 시사점이 유통 기업을 드라마 제작에까지 나서게 하고 있다.
지금까지 미디어커머스에 도전했던 기업들은 웹예능 등 대부분 코미디적 요소에 중점을 뒀다. 최근 방송인 황광희가 유통기업 사장과 함께 출연해 인기를 끌고 있는 유튜브 '네고왕'이 대표적 사례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실시간 영상 스트리밍을 하며 상품을 판매하는 라이브커머스도 주력 방식으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재미만으로는 상품 구매까지 잘 연결되지 않는 게 문제다. 또 라이브커머스는 애초 구매가 목적인 이용자가 많아 신규 고객 창출이 제한적이다.
이에 기업들은 아예 브랜드 스토리나 제품을 주제로 한 드라마 제작에 나서고 있다. 방송사가 제작한 드라마에 상품을 협찬하던 간접광고(PPL)나 상품 어필에만 집중되는 라이브커머스보다 한 단계 더 발전된 형태다.
실제 현대백화점그룹 패션 계열사 한섬은 제작과 기획력이 입증된 CJ ENM과 유튜브로 송출하는 드라마 '핸드메이드 러브'를 내달 11일부터 선보인다.
이전에도 롯데면세점, CU 등이 웹드라마를 제작한 적은 있다. 다만 드라마 배경이 면세점이거나 주인공이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으로 설정되는 등 기업과 브랜드가 고스란히 노출되는 식이었다.
반면 한섬 드라마는 판타지 로맨스물로 드라마 완성도에 더 집중했다. 회사 관계자는 "10부작 동안 한섬과 관련돼 노출되는 건 150벌의 옷뿐"이라고 강조했다. 드라마에 푹 빠져 있다 보면 간접적으로 옷 소비 욕구가 들게 만드는 시도다.
신세계백화점의 경우 영상제작 전문인력이 필요하다고 판단, 지상파 드라마와 넷플릭스 시리즈 등에 참여한 스튜디오329, 실크우드 등 제작사를 잇달아 인수했다. 업계에선 신세계가 드라마를 비롯해 차원 높은 차세대 미디어커머스를 준비하려는 포석으로 해석한다.
이처럼 품질과 형식을 바꿔가며 영상 소비자를 확보하려는 시간 점유 경쟁은 전방위적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임지아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업종을 넘어선 고객의 시간 점유율 경쟁이 기업의 새로운 위협 및 기회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