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주 만에 공개 석상에 등장해 경제 사업 운영 전반을 강하게 질책했다. 내년 1월로 잡혀 있는 8차 노동당 대회 준비 상황을 챙기며 내부 단속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미국 대선 결과에 대해선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
30일 노동신문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전날 당 중앙위원회 7기 21차 정치국 확대회의를 주재했다. 지난 15일 당 정치국 회의를 열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체계 강화와 비사회주의적 비리행위 근절을 주문한 데 이어 다시 회의를 소집해 기강 잡기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김 위원장 동생이자 정치국 후보위원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도 회의에 참석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8차 당 대회 준비상황과 경제사업에 대한 논의가 주로 이뤄졌다. 특히 김 위원장은 “경제지도기관들이 맡은 부분에 대한 지도를 주객관적 환경과 조건에 맞게 과학적으로 하지 못하고 있으며, 주관주의와 형식주의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과학성을 철저히 보장하고 무한한 헌신성과 책임성을 발휘해 달라는 당부를 덧붙였다고 신문은 전했다.
일종의 허리띠 졸라매기인 ‘80일 전투’까지 선포했지만 코로나19와 국제 제재, 자연재해 여파로 좀처럼 당 대회에 내세울 경제 성과가 나오지 않자 초조함을 드러낸 것으로 평가된다. 앞서 국가정보원은 지난 27일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북한의 올해 1~10월 무역 규모가 전년 동기 대비 25% 수준으로 줄었고, 식료품 가격도 급등했다고 보고했다. 이와 함께 김 위원장이 환율 급락의 책임을 물어 평양의 거물 환전상을 처형하는 등 상식적이지 않은 지시를 내리고 있다고도 전했다.
김 위원장이 최근 사상부문 강화를 잇따라 강조하는 것도 경제난과 관련이 있다는 게 통일부 분석이다. 여상기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이 비리사건과 국경 봉쇄로 모든 것을 내부적으로 조달해야 하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사상사업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불호령’을 8차 당대회를 앞두고 내부 기강을 잡기 위한 일종의 사전정지작업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날 “올 초부터 군, 사법, 안전, 교육 등 사실상 모든 권력기관 핵심부문에 대한 기구개편 언급과 문제점 비판이 나오고 있다”면서 “이번 경제 질책도 연초 중폭 이상의 조직개편을 위한 명분 찾기일 수 있다”고 말했다. 국정원은 지난 8월 김 위원장이 동생인 김 제1부부장과 측근들에게 외교와 경제, 군사 등 주요 분야에 있어 '총괄' 형식으로 권한을 위임하고 있다고 통치 방식의 변화 조짐을 보고했다.
이날 회의에서도 미국 대선 관련 언급은 없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있고, 조 바이든 차기 미 행정부의 대북정책 윤곽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신중한 모습을 이어가는 분위기다. 국정원은 27일 정보위 보고에서 "북한이 해외 공관에 미국을 자극하는 대응을 하지 말라는 내용을 전달했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