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끼난동' 집유 받은 뒤 이웃 살인… 범죄전력자 관리 '사각'

입력
2020.11.3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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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법원, 조현병에 따른 심신미약 인정해 석방
4개월 만에 범죄... 재판 중이라 보호관찰 미적용

도끼를 들고 난동을 부려 구속됐다가 1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50대 남성이 넉 달 만에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확인되면서, 범죄전력자의 재범을 방지할 장치가 시급하다는 여론이 거세다. 재범 가능성을 간과한 법원의 부적절한 관용, 평소에도 "사람을 죽이겠다"는 말을 내뱉은 우범자를 관리하지 못한 당국의 무신경, 강력범 전과자에게 격리와 감시 등 불이익을 줄 수 없는 제도적 한계점 등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석방 4개월 만에 이유 없이 이웃 살해

30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노원경찰서는 이웃에 살던 60대 남성 B씨를 살해한 혐의로 50대 남성 A씨를 구속해 검찰로 송치했다. A씨는 21일 오후 9시쯤 노원구 상계동 주택가에서 B씨를 날카로운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A씨와 B씨는 뚜렷한 직업 없이 쪽방에 거주하며 근근이 생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두 사람은 사는 곳이 가까울 뿐 이렇다 할 친분이 없었고, 원한 관계도 아니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B씨와 실랑이를 벌이다 홧김에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견상 이번 살인 사건이 우발적으로 보이기는 하나, A씨의 최근 행적을 보면 강력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개연성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올해 3월 환청을 들은 뒤 도끼를 들고 상계동 일대를 돌아다니며 "죽이겠다"고 시민들을 위협한 혐의(특수협박)로 구속 기소됐다. 그러나 1심 법원은 7월 "A씨가 범행을 대체로 인정하고, 조현병으로 인한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며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A씨를 석방했다.

집행유예로 풀려난 이후 A씨는 아무런 관리도 받지 않은 상태로 방치됐다. 법원이 집행유예를 선고하며 보호관찰 명령을 내렸지만, 아직 형이 확정되지 않아 보호관찰은 시작되지 않았다. A씨는 2심 첫 재판을 받은 지 불과 9일 만에 B씨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했다.

당정, 강력범 출소 후 '격리'하는 방안 추진

A씨가 △불과 몇 달 전 흉기를 들고 사람들을 협박해 유죄 판결을 받은 점 △평소에도 폭력적인 성향을 보였던 점 등을 감안하면, 경찰 등의 사전 조치가 있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범 가능성이 충분함에도 1심 판결 이후 형 확정시기까지의 '공백 기간'에 아무런 예방 조치를 할 수 없다는 한계도 노출됐다. 다만 경찰은 "(A씨의 경우처럼) 구치소에서 출소하더라도 별도 통지가 없어서 출소 여부나 시기에 대해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고 현실적 어려움을 호소했다.

현재로서는 '유사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이유만으로 범죄 전력자에게 법원 판결 외의 제재를 가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과거 사회보호법을 통해 재범 위험이 있는 전과자가 출소한 이후 보호 처분을 하는 제도가 있었지만, 2005년 '이중처벌'이라는 지적을 받고 폐지됐다. 아동성폭행범 조두순 출소 논란 이후 정부와 여당이 과거 사회보호법과 유사한 방식으로 흉악 범죄자를 출소 이후에도 보호시설에 격리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지만, 이를 둘러싼 논란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 교수는 "과거에는 범죄자 동향을 파악하기도 했지만, 현재는 인권 침해 소지가 있고 사회적으로도 인권 보호를 강조하는 분위기"라며 "범죄를 저질러 형기를 마친 사람의 범죄 가능성을 예측해 행동을 감시하기는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윤한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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