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실리아 헬리나 페인-가포슈킨(Cecilia Helena Payne-Gaposchkin)이 1979년 12월 7일 별세했다. 그는 인류에게 태양의 참모습을 알린 영국 출신 미국인 여성 천문학자다.
당시 영국 왕립천문학회 저널은 그의 부고에 "역사를 통틀어 가장 저명한 여성 천문학자"라고 소개하며 "그는 별빛의 스펙트럼 분석을 통해 우주 원소의 풍요로움과 화학적 동질성을 최초로 규명했다"고 썼다. 56년 전, 여성에게는 박사학위를 줄 수 없다며 그의 등을 떠민 이들이었다.
모교 케임브리지대는 1869년 여성에게 배울 기회를 제공했지만, 학위는 80년 뒤인 1948년에야 허락했다. 20대 재학시절인 1921년 세실리아 페인도 케임브리지 대학 건물에 계란을 던지고 방화까지 서슴지 않던 또래 페미니스트들의 시위를 지켜보았을 것이다.
페인은 1923년 세페이드 변광성 연구로 유명한 할로 섀플리에게 이끌려 미국 하버드대에 편입, 1925년 박사 학위를 받았다. 당시 갓 등장한 스펙트럼 분석 기법을 통해 태양이 지구와 달리 수소와 헬륨의 기체 항성이며, 우주에 가장 많은 원소도 수소라고 밝혔다. 당대 천문학계는 그를 비웃었다.
미국물리학회 초대 회장을 지낸 헨리 롤랜드(Henry A.Rowland, 1848~1901)이래 천문학계의 통념은 태양과 지구의 구성 성분은 동일하다는 거였다. 별 진화 연구의 권위자로 표면 온도와 밝기의 관계를 'H-R도(헤르츠스프룽-러셀도)란 도표로 완성한 프린스턴대의 헨리 러셀(Henry N. Russell, 1877~1957)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그는 태양과 지구의 빛 스펙트럼 차이가 성분 때문이 아니라 온도 때문이라며, 페인에게 논문 수정을 종용했다. 페인은 자신의 분석 결과를 수정하는 대신 그 결과가 '미심쩍다(spurious)'는 문구를 삽입함으로써 가까스로 학위를 받았다. 러셀은 4년 뒤 다른 방식의 연구를 통해 페인의 결론에 동조했고, 페인은 1956년 하버드대 최초 여성 교수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