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는 무엇을 겨냥했나

입력
2020.12.01 06:00
27면


지난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미국 대선 이후 첫 방문지로 한국과 일본을 찾았다. 미국의 동맹 회복을 통한 중국 압박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한국과 일본의 미국과 동맹에 대한 의견을 청취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프랑스의 한 매체는 왕이 부장의 한·일 방문을 중국의 매력공세로 표현했다. 중국의 매력공세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사자성어를 활용하는 의사 표현이다.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는 모호성으로 직접 비난을 비켜 가면서도 관계의 맥락을 강조하는데 용이하기 때문이다.

왕이 부장은 한국과 일본 방문에 '수망상조(守望相助)'와 '일의대수(一衣帶水)'라는 성어를 사용했다. '수망상조'는 맹자 '등문공상(滕文公上)'편에 나오는 말이다. 침범하는 적이나 생각지 못한 재난에 대처하기 위해 인근 각 마을이 상호 경계하거나 서로 돕는다는 의미이다. 미·중 갈등 국면에서 한국에 이 말을 던졌다는 것은 미국이라는 적에 공동 대응해 협력하자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마을에서 공전(公田)을 같이 경작하면서 협력을 했던 성어(成語)의 전통적 의미를 좇는다면 미국에 공동 대응하자는 의미는 너무 나간 해석일 수도 있다. 이처럼 다중적 의미를 통해 우회적으로 의사를 표출하는 게 중국식 외교의 특징이다. 일본을 '일의대수'라고 하여 '남사 진기하(南史 陳紀下)'편에 나오는 성어를 이용하여 매우 가까운 나라로 표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이 '일의대수'를 주로 일본을 상대로 사용하는데 비해, '수망상조'는 한국에만 특정해서 사용하지는 않는다. 2010년 12월 일본 공명당 당수와 회담, 2015년 5월 중·일우호교류대회, 2019년 11월 중·일 고위급 인문교류 회의에서도 시진핑 주석은 일본과의 관계를 모두 '일의대수'로 표현했다. 그러나 '수망상조'라는 표현은 한국뿐 아니라 몽골, 아프리카 그리고 국내 군중 관계에서도 빈번하게 사용했다. 따라서 왕이 부장이 이번에 '수망상조'라는 표현을 썼다고해서 반드시 미국에 공동 대항하자는 의미로 좁게 해석할 필요는 없다. 시진핑 주석은 전염병 공동 방역과 관련해, 3월과 5월 문재인 대통령과 전문 교환 및 정상 통화에서도 '수망상조' 표현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다 유념해야 할 것은 중국의 매력공세와 달리 한국과 일본에서는 왕이 부장의 방문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외교부 발표를 통해서 한국과 10개 항에 공통인식을 이뤘다고 발표했다. 특히 '중·한외교안보 2+2 대화' 시작을 중요 성과로 강조했다. 그러나 한국 외교부 발표에서 이에 대한 언급이 없다. '한·중 외교차관 전략대화'를 조기에 개최하도록 상호 협의해 나간다는 내용만 있다. 일본에서도 조어도 문제 관련하여 모테기 외무상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영토 문제에서 일본이 저자세로 대응했다는 비판이다.

중국 외교부는 한국과는 10개 항에 합의하고, 일본과는 5개 항의 공통인식과 6개 항의 구체적인 성과를 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관련 내용을 외교부 홈페이지에 공식 게재해서 방문 성과를 공식화했다. 우리의 회담 성과 발표와는 분명 다른 부분이 있다. 회담 결과가 왜 다른지, 어떻게 다른지 우리 외교부의 충분한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양갑용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