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자명예훼손 사건 핵심 쟁점인 '5·18 헬기 사격'의 실체를 둘러싼 검찰과 변호인 간 1라운드 공방은 검찰의 완승으로 끝났다. 2017년 4월 27일 고(故) 조비오 신부의 조카 조영대 신부가 전 전 대통령을 고발하고 검찰이 수사에 나선 지 3년 7개월 만이다. 재판을 맡은 김정훈 광주지법 형사8단독 부장판사는 30일 검찰이 그 동안 제시한 각종 수사기록과 증언을 증거물로 삼아 전 전 대통령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법원의 판결 요지는 "5·18 당시 헬기 사격이 있었음을 인정할 수 있다"라는 것이다.
이번 재판은 5·18 역사를 바로잡는다는 의미를 내포한 헬기 사격 여부에 대한 법적 판단을 구하는 것인 만큼 재판부가 어떤 법리에 따라 판정할 것인지, 또 목격자 증언을 어느 정도 채택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재판부는 판결 논리를 제시하기보다 검찰이 제출한 증거와 목격자 증언, 주요 수사결과를 대부분 인용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증거·증언=유죄'라는 논거다. 변호인 측은 "5·18헬기사격설은 비이성적 사회가 만들어낸 허구"라고 줄기차게 주장해 왔지만, 재판부는 "헬기사격은 있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대신 재판부는 이 증거를 왜 유죄 판단 근거로 삼았는지를 설명하는데 판결문(108쪽)의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재판부가 받아들인 유죄 증거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헬기사격 목격자들과 계엄군의 진술, 다른 하나는 전일빌딩 국과수 감정결과다. 재판부는 "1980년 5월 21일 500MD 헬기에 의한 사격을 목격하였다는 피해자(고 조비오 신부)의 진술은 직접 목격하지 않으면 진술할 수 없는 내용으로, 그 신빙성이 인정된다"며 "헬기사격 목격자 14명 중 8명의 진술도 피해자의 진술과 부합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헬기사격 명령은 있었지만 실제 사격은 없었다"는 헬기 조종사들의 주장에 대해 △1980년 9월 전투병과교육사령부(전교사)가 발행한 '광주소요사태분석(교훈집)'과 헬기사격 경고문 △계엄군의 헬기사격 요청 △광주에 투입된 헬기의 유류 및 탄약의 높은 소모율 △계엄사령부의 헬기사격지침 및 구두명령 등을 들어 배척했다. 변호인이 공판 내내 "헬기사격 목격자의 기억이 왜곡됐고, 헬기사격을 뒷받침할 물증도 없다"며 헬기 사격을 부인해왔다.
재판부는 또 전일빌딩 탄흔에 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결과에 대해서도 검찰의 손을 들어줬다. 변호인이 "10층에 형성된 탄착군으로 봤을 때 헬기 사격이 불가능하다"고 강하게 부인했던 부분에 대해 검찰의 주장대로 "감정결과를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라 분석해 보면 UH-1H 헬기가 M60 기관총을 이용해 전일빌딩을 향해 사격했음을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 전일빌딩 탄흔은 헬기사격을 입증하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라는 검찰 수사결과를 인정한 것이다. 다만, 전일빌딩 10층에서 발견된 탄흔이 모두 UH-1H 헬기에서의 기관총에 의한 사격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5·18 헬기 사격'은 그 동안 계엄군이 주장해 온 자위권의 경계를 뛰어 넘는 것으로 광주학살의 야만성과 폭력성을 뒷받침하는 증거였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헬기사격은 계엄군의 자위권 발동 주장을 무색케 하고 국민을 적으로 간주해 공격한 것"이라고 했다. 5·18 당시 시위대를 향한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5월 21일)가 자위권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계엄군의 주장이 무너졌다는 의미를 설명한 것이다. 재판부는 "전 전 대통령이 이런 헬기사격 쟁점을 인식하고도 자신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피해자에 대한 허위사실을 담은 회고록을 출간했다는 점에서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