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서정우 병장의 말년 휴가일이었다. ‘배야 꼭 떠라. 휴가 좀 나가자.’ 전날 홈피에 올렸던 간절함대로 배는 곧 출항할 참이었다. 돌연, 폭음과 함께 도처에 화염이 치솟았다. 선착장에서 몸을 돌려 부대로 내달렸다. 옆에서 폭발한 적의 방사포탄 파편이 서 병장을 직격했고 그 충격에 정모의 앵커모표가 날아가 나무에 박혔다.
갓 입대한 문광욱 이병도 빗발치는 적탄에 산화했다. 강승완 병장, 임준영 상병 등 숱한 병사들이 몸까지 옮겨 붙은 화염과 파편의 난비 속에서도 놀라운 투혼으로 반격했다. 민간인 둘도 희생됐고 몇 마을이 초토화됐다, 주민 대부분이 타지에서 장기 유랑했고, 전쟁 뒤끝의 외상후 증후군을 지금껏 겪고 있다.
연평도 도발은 휴전 후 처음 북한이 백주에 우리 영토를 유린한 전쟁행위였다. 그리고도 "미국과 남조선 호전광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감행된 군사도발"이라고 조롱하면서 ‘승전’을 축하했다. 이건 대한민국에 대한 능멸이었다. 국제여론도 ‘한국전 이후 가장 심각한 도발’이라고 경악했다. 강력한 보복작전을 못 편 걸 두고 “한국군이 약하다”고 비웃은 외신도 있었다. 홀로 맹렬히 싸운 연평도 해병대원들만 최소한의 국가위신을 지켰다.
월요일(23일)은 그 10주년일이었다, 평소에 대충 치르는 일상 행사도 꺾어지는 해에는 제대로 기념하는 법이다. 그런데 하필 이날 대통령은 연차를 냈다. 얼마 전 ‘소방의 날(58회)’이나 ‘농업인의 날(25회)’ 행사엔 참석했다. 정 불가피했다면 추모사나 하다못해 메시지라도 냈어야 했다. 며칠 전 옛서울 그림책을 보고 섬세한 감상문까지 올렸던 그다. 습관적인 ‘불편한 상황의 회피’ 아니고는 납득할 여지가 없다.
이도 모자라 통일부장관은 이날 대놓고 북한에 구애 사인을 보냈다. 기업인들을 불러 남북경협 압박을 넣었다. 오전엔 국회에서 남북연락사무소 통신 재개와 무역대표부 설치를 북에 청했다. 의도는 짐작하려들 것도 없다. 쇼맨십 강한 트럼프보다 비핵화에 더 원칙주의자인 바이든이 훨씬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좋게 말해 적극적 정세관리지, 실상은 바이든 정부가 대북정책의 가닥을 잡기 전 대못을 여럿 박아 두고자 함이다.
북한을 다루는 방식에는 정답이 없는 만큼 이런 사전 그물놓기도 전략적 선택 방안의 하나일 수 있음은 이해한다. 그러나 아무리 급해도 때는 가려야 하는 법이다. 적어도 이날만은 피했어야 했다. 비슷한 맥락으로 앞서 코로나 백신 제공 제안도 그랬다. 당장 우리 국민 필요량의 확보도 불분명한 상황이다. 두 달 전 서해 피살 공무원은 정부가 약속한 진상 규명도, 저들의 사과도 없이 잊혔다. 다 북한 심기에 맞추려함이다. 호국영웅들에 대한 존중이나 국민 안위보다 어떻게 상시 침탈자에 대한 배려가 그토록 일관되게 살뜰한가.
이쯤 되면 이런 의심도 지나칠 게 없다. 혹 이 정권 담당자들은 대한민국을 반드시 지켜내야 할 나라가 아니라, 통일시기까지의 잠정체제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더 불온한 상상으로는 남북문제를 국익과 국민보호 차원이 아니라 80년대식 운동권 이념의 실현과정으로 다루는 것은 아닌지. 윤석열 찍어내기로 온 나라가 난장판이어도 이는 국가 정체성과 관련한 더 근본적인 문제여서 도저히 짚지 않고는 넘어갈 수가 없다.
국토가 짓밟히고 제 국민이 숨진 그 10주년일에 국가를 위해 희생한 이들은 외면하고 가해자를 감싸 안은 건 국체를 모독하고 국민을 욕보인 것이나 다름없다. 묻는다. 국가를 지킬 명분을 이렇게 훼손하고도 튼튼한 안보를 기대할 수 있는가. 나아가 이런 식의 굴욕과 굴종으로 구걸한 평화라는 게 과연 지속가능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