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또 침묵...'추미애 옹호'로 읽혀도 어쩔 수 없다는 靑

입력
2020.11.26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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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피성 항변 불구 '정치적 메시지' 작용


문재인 대통령이 침묵하고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직무 배제·징계 청구 조치에 대해 문 대통령은 25일 이틀째 굳게 입을 닫았다. '법무부 장관·검찰총장의 인사권자이자 국정의 최종 책임자인 문 대통령이 입장을 밝히라'는 주문이 쏟아졌음에도 청와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입장을 밝히면 사실상 가이드 라인이 될 것"이라며 침묵의 불가피성을 항변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침묵 역시 '정치적 메시지'다. 문 대통령의 침묵이 길어지고 완고해질 수록, '문 대통령이 추 장관을 옹호하고 있다'는 사인으로 해석될 것이다.



靑 "文 침묵? 가이드라인 주란 거냐"

청와대는 추 장관과 윤 총장이 갈등한 지난 1년 가까이 내내 거리를 뒀다. 추 장관의 '조치'로 갈등이 파국에 치달은 25일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문 대통령은 한국판 뉴딜 현장을 방문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도 올렸지만, 추 장관에 대해선 우회적 언급도 하지 안핬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지금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하겠나. 윤 총장 징계 절차 등에 대한 가이드 라인을 말하라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문 대통령이 메시지를 내면 법무부 징계위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점을 감안한 '원칙적 침묵'이라는 뜻이다.

청와대 내부 분위기는 '때가 아니다'는 것이다. 청와대 다른 고위 관계자는 "앞으로 '일'이 진행되면 대통령이 입장을 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권에선 법무부가 윤 총장 징계를 결정한 뒤 문 대통령에게 검찰총장 해임을 건의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문 대통령이 해임 건의에 답해야 할 때까지, 다시 말해 윤 총장 거취 정리가 '끝내기 단계'에 들어갈 때까지는 침묵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불가피한 침묵" VS "부적절한 침묵"

청와대의 설명에도 문 대통령이 입장 표명 책임을 깨끗이 벗는 건 아니다. 윤 총장을 겨냥한 추 장관의 조치 결정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다. 추 장관은 24일 오후 조치 발표 직전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과 김종호 청와대 민정수석을 통해 문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문 대통령이 제동을 걸지 않은 만큼, 용인했거나 의중을 실은 것'이라고 야권이 몰아세우는 대목이다.

온 나라가 추·윤 사태로 들썩이는데도 문 대통령이 국정의 최고·최후 결정권자로서 정치적 책임을 방기한다는 지적도 무성하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이번 사태에 대한 문 대통령의 입장을 국민이 궁금해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법무부 징계위 결정이 나와 입장을 내놓을 수 있는 법적인 때를 기다린다는건 '답이 아닌 답'"이라고 꼬집었다.



발빠른 대응... 침묵 의도 짙었다

문 대통령의 침묵은 의도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추 장관 발표 직전 보고를 받았지만, 별도 언급은 없었다"는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 명의 서면 브리핑이 나온 건, 24일 추 장관 발표로부터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서였다. '직전에 알았다'기엔 발빠른 반응이었고, 내용 역시 '대응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청와대가 미리 준비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문 대통령이 침묵한 지난 10개월 간 추 장관은 인사권, 수사지휘권, 감찰권 등 법무부 장관의 여러 권한을 동원해 윤 총장을 압박해 왔다. 문 대통령은 추 장관의 행보에 제동을 걸지 않았다. 이틀째 이어지는 이번 침묵 역시 두 사람의 갈등과 '거리 두기'를 하되 '암묵적 동의'를 표한 것으로 해석하는 게 더 자연스럽다.

신은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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