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이젠 추·윤 갈등 매듭지어야

입력
2020.11.2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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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4일 헌정 사상 처음으로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 청구와 직무배제 조치를 취해 나라가 들썩이고 있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이틀째 아무런 언급이 없다. 수사지휘권과 인사권 문제 등을 두고 추 장관과 윤 총장 간 갈등이 수개월째 고조되며 각종 정국 현안을 집어삼키는 동안에도 수수방관하던 문 대통령이 이번에도 보고만 받고는 침묵을 택한 것이다.

청와대는 법무부가 윤 총장에 대한 징계 절차에 들어가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의 언급이 징계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침묵의 배경으로 거론했다고 한다. 법무부가 징계위원회를 열어 윤 총장에 대한 정직이나 해임 등을 청구하는 절차를 끝내면 그때서야 문 대통령이 입장을 표명할 것이라는 얘기가 여권에서 나온다.

청와대가 마치 추·윤 충돌에 중립적인 모양새를 취하는 듯하지만, 이를 곧이 곧대로 받아들일 국민은 없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5일 “스스로 거취를 결정해달라”고 사퇴를 압박하는 등 여권은 윤 총장의 혐의를 기정사실화하려는 기류가 뚜렷하다. 대통령의 묵인하에 당과 정부가 사실상 윤 총장 찍어내기의 수순을 밟고 있다는 추측이 터무니없지만은 않다.

법무부 감찰 결과대로 대검이 재판부에 대해 불법 사찰을 했다면 대통령이 엄중 질책하고 잘못된 관행에 대해 철저한 점검과 제도 개혁을 지시하는 게 합당하다. 법무부와 검찰청 간 의견이 충돌한다면 법정으로 가기 전에 시시비비를 우선 가려야 할 이도 당연히 대통령이다. 이런데도 국정 운영 책임을 방기한 채 형식 논리를 앞세우는 것은 정치적 리스크를 최대한 피해 가겠다는 의도 외에 다른 이유는 없어 보인다.

윤 총장을 파격 발탁하며 적폐 청산과 검찰 개혁의 적임자로 치켜세웠던 이는 문 대통령이다. 여권의 주장대로 윤 총장의 비위 혐의가 심대하다면 문 대통령이 이제라도 국민들에게 그 당위성을 소상히 설명해야 한다. 일선 검찰청에선 윤 총장 직무배제에 반발해 평검사 회의를 논의 중이라고 한다. 불길이 커지기 전에 청와대가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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